"배움 찾아 고향 떠나 천리길"…이래홍 씨, 56년 만에 백령도 모교 방문

    작성 : 2026-05-08 10:08:54
    11살 나이에 부모 곁 떠나 눈물겨운 낙도 생활
    스승의날 앞두고 학창 시절 추억·후배들에 특강
    광암 약국 등 운영...밀알중앙회 총재로 봉사활동
    ▲ 졸업 후 56년 만에 모교를 찾은 이래홍 씨가 감회를 말하고 있다

    보릿고개 시절 11살 나이에 배움을 찾아 전남 함평에서 인천 백령도까지 천리길을 나섰던 이래홍 씨.

    당시 10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그가 56년 만에 70대 백발노인이 되어 푸른 꿈을 키웠던 모교 백령중·고를 찾았습니다.

    5월 스승의날을 앞두고 동창생들과 함께 청춘의 시간이 머물렀던 학교를 방문한 것입니다.

    1970년 2월 졸업 이후 처음으로 들어선 학교 교정은 현대식 시설로 바뀌어 낯선 모습이지만 그 시절의 기억들은 생생히 되살아났습니다.

    "반세기 만에 모교를 둘러보니 학창 시절 온갖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듭니다. 그리운 선생님들과 급우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벅찬 감회가 느껴졌습니다.
    ◇ 인생의 커다란 도전이자 전환점
    그에게 백령도에서의 생활은 인생의 커다란 도전이자 전환점이었습니다.

    전남 함평 신광면에서 태어난 이 씨는 가정 형편상 초등학교 밖에 보낼 수 없다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천리(400㎞)나 떨어진 최북단 섬 백령도로 향했습니다.

    그가 어린 나이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백령도로 가고자 결심한 것은 당시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백령도 천주교 복자보육원(고아원) 원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였습니다.

    ▲ 고등학교 3학년 때 세운 '보은탑' 과거 사진

    천주교가 운영하는 복자보육원에 입소하면 배고픔 걱정 없이 마음껏 고등학교까지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이곳에는 미국인 부영발 신부가 부임해 6·25 전쟁 직후 암울한 백령도를 희망의 섬으로 탈바꿈시키고자 주민계몽과 사회개발 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었습니다.

    특히 부영발 신부는 케네디 대통령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미국의 지인 및 은인들이 매월 10달러씩 기부하는 돈으로 양로원을 세우고 김안드레아 병원을 지어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등 백령도 주민의 복지를 크게 향상시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보은탑' 앞에서 동창생 및 정춘희 교장 선생님과 함께 기념촬영

    ◇ 등하굣길에도 영어단어장 놓지 않아
    이 씨가 보육원에서 생활하면서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부영발 신부의 보살핌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보육원에서 학교까지 매일 8㎞를 오가면서 한 손에는 책가방을 들고, 한 손에는 영어단어장을 보며 학업에 대한 집념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전교학생회장을 맡아 학교행사를 주관했으며, 특히 스승의 은혜를 깊이 간직하기 위해 '보은탑'을 세웠는데 지금도 교정에 우뚝 서 있습니다.

    ▲ 강당에서 후배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하는 이래홍 씨

    그는 "당시 백령도는 인천에서 배로 12시간 걸리는 낙도였기에 선생님들이 발령을 받아도 제때 부임하지 못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오는 경우가 많았고, 정든 선생님이 전근 가실 때면 용기포 선창까지 나가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배웅하던 기억이 있다"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 28세 젊은 나이에 새마을훈장 수훈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시에 실패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이 씨는 지식인 청년으로서 새마을운동에 참여해 마을 환경개선과 주민 의식 개혁에 앞장섰습니다.

    그 결과 헌신적인 노력을 인정받아 28세 젊은 나이에 새마을훈장 노력장을 수훈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 정춘희 교장에게 『밀알 50년사』를 전달하는 장면

    아울러 양돈업에 뛰어들어 남다른 아이디어와 부지런함으로 오늘날의 광암축산을 일궜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켠에는 대학 입시에서 낙방한 아쉬움이 늘 어른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오랜 꿈을 좇아 뒤늦게 약대에 진학해 불혹의 나이에 약사가 되었고, 광주에서 광암약국을 개업한 후 48세에 약학박사의 타이틀까지 땄습니다.

    또한 사단법인 밀알중앙회 총재로서 사회봉사 활동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 후배에게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 특강
    그는 졸업 후 56년 만에 모교를 찾은 이날, 강당에서 후배 학생들을 상대로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전해 감동의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그는 강의 말미에 "이 교정에는 제 젊은 날의 눈물과 희망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정에는 우리들이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세웠던 '보은탑'이 지금도 서있습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이 자리에 다시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당부했습니다.

    ▲ 백령중·고 역사관을 둘러보는 이래홍 씨

    아울러 함께 동행한 동창(박신숙, 최춘옥, 장세자)과 후배(노순복)들도 '꿈'을 주제로 각자의 경험과 삶의 교훈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어 정춘희 교장 선생님의 안내로 보은탑과 역사관을 둘러보고 학교측에 학창시절 사진과 자료를 전달했습니다.

    이 씨는 이번 방문 기간 학교 뿐 아니라 백령천주교회(보육원)와 기독교 성지인 중화동교회, 과거 주민들이 여객선을 승선하던 용기포항, 하늬비치, 콩돌해안, 사곶비행장, 바다의 금강산해금강에 비견되는 두무진 등을 돌아보며 추억을 회상했습니다.

    ▲ 학창시절 추억이 서린 콩돌해변에서 동창들과 함께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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