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한국인은 왜 나이도 먹고, 마음도 먹을까

    작성 : 2026-11-06 14:55:04
    “학생, 몇 살 먹었어?”

    이웃 할머니의 다정한 질문에 필리핀에서 온 유학생이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노, 쌀! 브레드, 빵 먹었어요!”

    할머니는 나이를 물었는데 학생은 먹은 음식을 대답했다. 교실에서 이 일화를 들으면서 ‘살’과 ‘쌀’의 미묘한 발음 차이도,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도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질문이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한 문장에 수수께끼가 여러 개 들어 있었던 셈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인은 참 많은 것을 먹는다.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나이를 먹는다. 겁도 먹고, 마음도 먹는다. 심지어 욕까지 먹는다. 나이는 무슨 맛이며, 마음은 어디에 담아 먹는 것일까. 겁을 먹으면 배라도 부를까. 우리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말들이 낯선 언어를 배우는 사람 앞에서는 새로운 질문이 된다.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이런 질문들이 교실에 웃음을 불러온다. 그러나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제법 깊은 언어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면서도 시간을 보내고, 시간을 벌고, 때로는 시간을 죽이기도 한다. 마음은 열었다가 닫고,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추상적인 개념들이 언어 속에서는 마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처럼 움직인다.

    인지언어학에서는 이러한 표현을 개념적 은유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인간은 추상적인 생각을 이해할 때 익숙한 신체적 경험과 구체적인 사물의 특성을 빌려 온다. ‘마음을 먹다’는 음식을 삼키는 행동이 아니라 결심을 나타내며, ‘나이를 먹다’ 역시 동사 ‘먹다’의 의미가 확장된 표현이다.

    물론 한국어에만 이런 표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에서도 자존심을 삼킨다는 뜻으로 swallow one's pride라고 말한다. 다만 언어마다 익숙하게 사용하는 비유와 표현 방식은 다르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의 창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의 어려움은 단어의 뜻을 익힌 뒤에도 계속된다.

    한국인은 누군가를 만나면 “밥 먹었어요?”라고 묻곤 한다. 실제 식사가 궁금해서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안부를 묻는 인사다. “언제 한번 밥 먹어요”라는 말 역시 반드시 날짜를 정하자는 약속은 아니다. 친근함을 표현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맥락을 모르는 사람은 약속 날짜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누구도 틀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서로 다른 뜻을 이해한 것이다.

    언어교육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고 상황에 적절하게 말하는 능력을 ‘화용적 능력’이라고 한다. 단어의 뜻을 아는 것과 그 말을 건넨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말에는 사전이 설명하지 못하는 관계의 거리와 감정의 온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잘못 알아들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너그러운가.

    발음이 어색하면 웃고, 대답이 엉뚱하면 쉽게 당황한다. 때로는 한국어가 서툰 사람을 생각까지 서툰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앞에서 단어 하나를 찾느라 머뭇거리는 사람이 자신의 모국어로는 누구보다 유창하게 세상을 설명할 수도 있다. 짧은 한국어 문장 뒤에도 한 사람의 지식과 경험, 오랜 삶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오히려 한국어 교실에서 내가 배우는 순간은 이런 때다. 학습자들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묻지 않았던 것들을 질문한다. 왜 나이를 먹는다고 하는지, 왜 같은 말이 상황에 따라 다른 뜻이 되는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의 눈으로 우리말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전남광주의 학교와 직장, 시장과 이웃의 일상에서도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만나고 있다. 그 만남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발음만이 아니다. 상대의 말이 서툴더라도 끝까지 들어 주고,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다시 묻고, 낯선 차이를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태도다.

    한국어교육이 새로운 언어의 문을 여는 일이라면, 사회통합은 그 문턱에서 서로를 맞이하는 일이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동안 우리도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처음의 ‘먹다’라는 말로 돌아가 보자.

    낯선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겁을 먹을까. 발음이 틀릴까 봐, 말이 통하지 않을까 봐, 누군가 자신을 비웃을까 봐.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마음을 먹고 교실로 들어온다. 그렇게 서툰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향한 용기 있는 첫걸음이 된다.

    우리는 해마다 나이를 먹는다. 그러나 세월이 쌓인다고 저절로 타인을 이해하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와 다른 말을 끝까지 듣고, 익숙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을 때 이해의 깊이도 조금씩 더해진다.

    나이를 먹는 것은 세월의 일이지만, 마음을 먹고 넓히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본 칼럼은 KBC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윤숙 한국어교육 다문화정책연구회 대표·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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