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한 줄도 감성 있게"...'텍스트힙'에 빠진 청년들 [청년, 오래된 새로움] ③

    작성 : 2026-10-30 15:06:11
    "문장 한 줄도 감성 있게"...'텍스트힙'에 빠진 청년들 [청년, 오래된 새로움] ③
    ▲서점에 진열된 책들

    편리함이 당연해진 시대, 청년들은 오히려 낡고 불편한 것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합니다.

    이에 KBC는 <청년, 오래된 새로움>이라는 타이틀로 빠름보다 깊음을, 가벼움보다 묵직함을 택한 청년들이 아날로그를 즐기는 방식을 따라가 봅니다.

    ◇ 책 읽는 모습이 '힙'하다...텍스트힙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청년들의 손에는 다시 책이 들려있습니다.

    짧은 영상은 몇 초면 넘어가지만, 책 한 권은 읽는 데 며칠이 걸립니다.

    이 가장 느린 콘텐츠를 청년들이 다시 펼치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독서율은 역대 최저(38.5%)를 기록했지만, 20대 독서율은 75.3%에 달했습니다.

    모두가 책에서 멀어지는 시대, 20대는 오히려 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책 읽는 모습을 멋있게 여기는 분위기, 이른바 '텍스트힙'이 있습니다.

    텍스트힙은 '글자(Text)'와 멋지다는 의미의 '힙(Hip)하다'를 합친 말입니다.

    ◇ 공부 말고 '재미'로, 화면 말고 '종이'로

    같은 조사에서 성인이 책을 읽는 이유 1순위는 '재미'였습니다.

    공부나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 책을 펼치는 것입니다.

    평소 책을 좋아하는 정 모(24)씨에게 책은 '다른 세상으로 가는 모험'입니다.

    정 씨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것만 찾는 나도 다른 세상이 궁금할 때가 있다. 그때 독서가 그 호기심을 채워준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독서 애호가 오 모(26)씨 역시 책의 매력을 '다양한 경험'에서 찾았습니다.

    오 씨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며 "책 속 문장과 경험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모두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화면 속 글자보다 종이책을 선호한다고 했습니다.

    정 씨는 "휴대폰 너머 글자는 왠지 온기가 없다고 느껴진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에게 종이책은 손으로 넘기고 만지며 읽는, 온기가 느껴지는 매체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손글씨로 옮겨 적은 필사 페이지 [오 모 씨 제공]

    ◇ 인덱스 붙이고, 필사하고, 표지까지 꾸미고

    청년들은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쓰고 꾸미는 일도 즐깁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 인덱스를 붙이거나, 문장을 손으로 옮겨 적는 '필사'를 하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어 저장하면 몇 초면 끝나지만, 청년들은 손으로 직접 쓰며 남기는 데 의미를 둡니다.

    책 표지에 십자수를 놓아 나만의 표지를 만드는 '표꾸(표지 꾸미기)'도 인기입니다.

    이렇게 모은 구절과 필사, 표꾸를 공유하는 독서 전용 소셜미디어 계정을 운영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청년들은 책에서 의미를 찾고, 책으로 나라는 사람을 표현합니다.

    개성이 중요해진 시대에 책은 읽고 끝나는 물건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교환독서를 위해 테이블 위에 펼쳐 둔 책들

    ◇ 혼자 읽던 책, 이제는 같이 읽습니다

    혼자 문장을 모으던 청년들의 관심은 이제 '함께 읽기'로 번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책 여백에 메모를 남기고 다른 사람과 돌려 읽는 '교환독서'입니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과거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오 씨는 "동일한 문장을 읽는데도 다 다른 생각을 갖고, 그 생각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재밌었다"고 말했습니다.

    함께 읽는 문화가 퍼지며 출판사가 직접 독서모임을 주최하기도 합니다.

    정 씨는 올해 6월까지 한 출판사가 주관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했습니다.

    회원들과 화상통화를 통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책을 함께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정 씨는 "집에 있는데도 도서관에서 사람들과 같이 읽는 것 같은 '사이버 온기'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혼자 읽던 책이 이제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매개가 되고 있습니다.

    ◇ 독립서점 어디?…지도 검색·'서점ON'으로 한눈에

    함께 읽는 즐거움은 청년들을 책이 있는 공간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곳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독립서점입니다.

    책장 곳곳에는 서점지기(서점 주인)의 추천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고, 서점이 직접 북토크 같은 도서 행사를 기획하기도 합니다.

    독립서점을 자주 찾는 오 씨는 "옷 가게마다 개성이 다르듯 요즘은 독립서점마다 고유한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성 들여 책에 대해 적어 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 책에 푹 빠진다"고 덧붙였습니다.

    개성 있는 독립서점이 궁금하다면 지도 플랫폼에서 '독립서점'을 검색해 보는 것만으로도 근방의 독립서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국 지역서점의 위치와 정보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문화체육관광부가 구축한 지역서점 포털 '서점ON'의 서점 찾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서점뿐 아니라 책 읽기 좋은 장소를 찾아 나서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SNS에는 도서관, 카페, 공원 등 고즈넉한 분위기의 '독서 명당'을 추천하는 게시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은 서점과 독서 공간을 넘어, 대규모 도서 행사로 향하는 발걸음도 늘고 있습니다.

    ▲티셔츠와 책이 진열되어 있는 '2026 서울 국제도서전' 현장

    지난 6월 열린 '2026 서울 국제도서전'에는 약 16만 명이 몰렸고,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책 읽는 ACC'에도 사흘 동안 4만 3,000여 명이 다녀갔습니다.

    책이 혼자 읽는 대상을 넘어, 사람들과 모여 함께 즐기는 문화가 된 것입니다.

    청년들이 책에서 찾는 것은 정보만이 아닙니다.

    직접 고르고, 만지고, 쓰고, 나누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나만의 취향입니다.

    책은 오래된 매체지만, 즐기는 방식은 다채로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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