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광 앵커: 서울광역방송센터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활한 눈 덮인 타이가 숲. 때로는 몇 날 며칠 사람 인적을 구경도 할 수 없는 적막한 고독.
그 가운데서도 서쪽 하늘을 온통 시뻘겋게 물들이면 떨어지는 석양. 밤이면 머리 위로 떨어질 듯 밤하늘을 가득 채운 굵은 별빛들.
또 때론 끝도 없이 광활하게 펼쳐지는 노란 밀밭, 붉은 단풍들. 끝없이 이어지는 산과 들, 호수.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것, 길.
뭐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늘 KBC '뉴스메이커'는 좀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길은 평화다'를 화두로 붙잡고 30년째 유라시아 대륙 횡단에 나서고 있는 사단법인 세계탐험문화연구소 김현국 이사장, 올해는 더 특별한 대륙 횡단을 꿈꾸고 있다고 하는데, 김현국 이사장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이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김현국 이사장: 반갑습니다.
△유재광 앵커: 일단 제가 오프닝을 너무 제 상상대로 마음대로 했나요? 아니면 저런 비슷한 장면이 좀 있나요? 어떤가요?
▲김현국 이사장: 표현이 너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유재광 앵커: 고맙습니다. 그런데 우리 '뉴스메이커'에 주로 정치인들 많이 모셨는데 비정치인 모신 거는 제가 기억하기에는 처음인 것 같은데. 일단 간단한 인사 말씀부터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현국 이사장: 알겠습니다. 예. 반갑습니다. 저는 '탐험가 김현국'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연결되는 길.
서울이나 광주, 부산, 대한민국 어디에서든지 출발해서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암스테르담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 횡단 도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자료화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올해가 30주년인데요. 현재 제7차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재광 앵커: 유라시아 대륙 횡단 얘기는 좀 뒤에 하고. 제가 이사장님 명함을 받았는데 '탐험가 김현국' 이렇게 돼 있는데 '탐험가'라는 직업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쓰는 말인가요? 이게 어떻게 되는 건가요?
▲김현국 이사장: 탐험가는 정식 직업군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게 정식 직업군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에 따른 경제적인 이윤이 만들어져야 되는데 그런 부분이 없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돈벌이는 안 된다는 말씀이네요?
▲김현국 이사장: 그렇습니다. 지출만 주로 됩니다.
△유재광 앵커: 그런데 그걸 30년째 어떻게 계속할 수가 있나요?
▲김현국 이사장: 어떤 소망과 그다음에 자기 확신, 가치죠.
△유재광 앵커: 소망, 확신, 가치가 있다고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잖아요.
▲김현국 이사장: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전업작가나 비슷합니다.
△유재광 앵커: 이게 궁금한 데 더 물어보기도 살짝 좀 민망하고 그런 것 같아서 이건 나중에 다시 기회가 생기면 물어보도록 하고.
제7차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러면은 그동안 1, 2, 3, 4, 5, 6차, 최소한 여섯 번은 횡단을 하셨다는 말씀인 거잖아요?
▲김현국 이사장: 그렇습니다.
△유재광 앵커: 제일 처음 유라시아 대륙 횡단하신 게 언제인가요?
▲김현국 이사장: 1996년입니다. 지금부터 31년 전에.
△유재광 앵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신 거예요? 유라시아 대륙 횡단이면.
▲김현국 이사장: 당시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했습니다.
△유재광 앵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어떻게 가요? 96년이면.
▲김현국 이사장: 수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때인데.
△유재광 앵커: 러시아 땐데 들어갈 수는 있었나요? 블라디보스토크.
▲김현국 이사장: 그러니까 31년 전에는 현재는 배로도 블라디보스토크를 왔다 갔다 하는데 당시에는 비행기밖에 없었어요.
△유재광 앵커: 비행기를 어디서 타고 가요? 블라디보스토크. 근데 블라디보스토크 여기가 중국으로 치면 흑룡강성 그쪽이 김태희가 밭매고 전지현이 논매고 그런다는 동네 아닌가요? 거기가.
▲김현국 이사장: 거기는 이제 좀 더 옆에 있는. 그러니까 연해주는 북한 나진 선봉 넘어서면 바로 연해주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옆에서 하바롭스크 그다음에 아무르주로 연결되는데. 서울에서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로 가는 비행기가 있었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때 그게 왜 있었죠? 96년도에.
▲김현국 이사장: 1990년에 한러 수교가 이루어졌고. 96년이면 햇수로는 벌써 6년째이기 때문에.
△유재광 앵커: 아 한러 수교를 하면서 비행 노선이 생겼던 모양이네요.
▲김현국 이사장: 그렇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러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 거기까지는 뭐를 타고 가셨나요?
▲김현국 이사장: 그러니까 이제 제가 1996년에 대학을 졸업을 했고 곧바로 모터바이크와 함께 제가 비행기에 탔고. 그 모터바이크와 함께 러시아 극동 도시 하바롭스크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을 해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모토바이크를 타고 달린 거죠.
△유재광 앵커: 그 거리가 얼마나 되나요?
▲김현국 이사장: 1만 킬로입니다.
△유재광 앵커: 1만 킬로요?
▲김현국 이사장: 예. 당시에 정확한 킬로미터는 이제 1만 2천 킬로미터 찍더라고요.
△유재광 앵커: 그거를 몇 월 달에 하셨나요?
▲김현국 이사장: 그러니까 대학교 졸업을 하고 바로 한 달 뒤에 갔으니까 3월 달부터 해서 10월 중순까지.
△유재광 앵커: 6개월이나 걸리나요? 가는데.
▲김현국 이사장: 예. 그렇습니다.
△유재광 앵커: 아니 그때 무슨 뭐 내비게이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갔다 온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정표 같은 거는 제대로 있었나요. 어떻게 갔나요?
▲김현국 이사장: 그렇습니다. 1996년은 일단 우리가 아날로그 시대라고 하죠.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면 1991년 12월 25일에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이 해체가 된 해이고요.
우리는 서방 세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철의 장막 소련 러시아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의 특징 중에 하나죠. 대중들의 이동을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잖아요) 네, 그리고 소련 당시엔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장거리 이동 특성화를 해 놔서 도로 상태도 엄청 좋지 않았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가는 데도 현지인들도 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유재광 앵커: 말은 통하셨나요? 그런데.
▲김현국 이사장: 당연히 몰랐죠. 저는 러시아어를 전공하지 않았으니까 단지 단어 5개 외워서 갔습니다.
△유재광 앵커: 무슨 단어인가요?
▲김현국 이사장: 생리 현상 필요하니까 화장실.
△유재광 앵커: 화장실 어디냐?
▲김현국 이사장: 그다음에 이제 제가 아쉬운 부분이 많기 때문에 '감사합니다'는 많이 쓰겠죠.
△유재광 앵커: 밥 좀 주세요. 그런 말들.
▲김현국 이사장: 그렇습니다. 여행자의 고민이 먹고 자는 문제이기 때문에 가스트니자. 호텔. 이런.
△유재광 앵커: 먹고 씻고 자는 거는 어떻게, 그 6개월을 어떻게 갔어요?
▲김현국 이사장: 먹고 자는 거는 이제 본성이기 때문에 이거는 거스를 수가 없잖아요.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유재광 앵커: 그러니까 어디서 먹고 어디서 자고?
▲김현국 이사장: 그러니까요. 먹는 거는 도로가 되게 열악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러시아의 도시들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따라서 만들어졌거든요.
그래서 도로변에는 대규모 마을들이 없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음식이나 잠자리가 불편하다는 거겠죠. 그래서 이틀 치, 3일 치 식량을 배낭에다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가다 먹다 가다 먹다 먹었고.
그다음에 잠자리는 마을들이 드물기 때문에 도로변을 따라서 사냥꾼의 집에서 자거나, 또 화전민, 그다음에 이제.
△유재광 앵커: 가서 '재워주세요' 하면 재워주나요? 근데 그 사람들이.
▲김현국 이사장: 유라시아 대륙은 정말 어떤 혹독함의 상징이거든요. 여기에서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의미거든요.
누구나 여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행자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픈된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재광 앵커: 이게 중동 사막 베두인이나 몽골 이런 초원에서 유목하는 사람들은 누가 여행자가 지나가면서 먹여주고 재워달라고 하면 꼭 챙겨주는 거랑 똑같은 거네요? 거기도 그러니까
▲김현국 이사장: 그렇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런데 그런 걸 알고 가셨어요? 아니면 가서 부딪혀 보니까 밥도 주고 재워주고 그러네. 그렇게 아신 거예요?
▲김현국 이사장: 그때는 이제 전혀 정보는 없었고. 단지 무기 하나는 무기는 청춘, 열정 하나였죠. 그리고 내가 이 길을 한번 개척해 보겠다 라는 그런 의지, 도전 정신이었습니다.
△유재광 앵커: 아니 그런데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가셨다고 하셨는데. 대학교 졸업하면 보통 취직할 생각을 하잖아요. 난 시베리아 횡단해야지. 애초에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신 거예요?
▲김현국 이사장: 그러니까 이제 제가 탐험가가 된 계기는 '1987'이라는 숫자하고 관계가 깊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게 '87년 항쟁'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건가요?
▲김현국 이사장: 그렇습니다. 앵커님도 잘 기억하시는데 우리 역사에서 '1987'이라는 숫자는 '6월 민주화 운동'으로 기억되고 있죠.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대학교에 입학했던 해이고요. 입학해서 제가 경험했던 건 저는 도서관에서 공부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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