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화의 요람, 신교육의 발상지' 배재학당...스벅 가야지, '일베 혐오' 논란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영원무궁하도록.
올림픽 열기로 뜨겁던 1988년의 어느 날, 지금은 철거되고 없어진 서울 동대문구장이었습니다. 운동장 응원석엔 '배재 교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배재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한 덩어리가 돼서 주먹 쥔 손을 어깨에서 배꼽 아래까지 힘차기 휘저으며 한마음 한뜻으로 교가를 부르는 모습은.
어린 마음에. 나름 장관이었고 감동이었습니다.
청룡기였는지 봉황기였는지, 아니면 황금사자기였는지 대통령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졸업생 재학생들이 다 몰려가 응원을 했던 걸 보니 결승전이었던 것 같은데, 상대는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였던 것 같은데. 이 또한 그저 가물가물합니다.
그저 기억에 콱 찍혀 남아 있는 건.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영원무궁하도록.
목이 터져라 불러댔던 '배재 교가'입니다. 저는 배재고를 졸업한 배재고 출신입니다.
◇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랄랄랄라 씨스뿜바...저게 뭐야? 저게 교가야? '뜨악'

처음 배재고 교가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게 '저게 뭐야? 저게 교가야?' 이런 뜨악한 반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무슨 산 정기 받고', '무슨 무슨 강 휘도는' 이런 교가 류완 너무도 다르게 줄창 '노래하고 노래하고 노래합시다'만 외치기 때문입니다.
후렴은 더 특이합니다.
랄랄랄라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 랄랄랄라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
시스뿜바? 각설이 타령 '품바 품바'도 아니고.'서울시스터즈'도 아니고. 씨스뿜바? 요즘 말로 하면 '이게 뭥미?' 입니다.
그런데 '배재학당'의 시작과 연원을 알면 교가가 왜 저런지 고개가 끄덕여지게 됩니다.
◇ 헨리 아펜젤러, 1885년 배재학당 첫 설립...고종, '培材學堂' 친필 현판 하사
배재학당은 1885년, '헨리 아펜젤러'라는 이름을 가진 선교사가 서울 정동에서 방 두 칸짜리 집을 사서 벽을 터 '이겸라, 고영필'이라는 이름의 두 학생을 받아 수업을 시작한 것이 시초입니다.
이듬해인 1886년, 고종 임금은 아펜젤러가 조선의 청년들에게 영어와 서구 문물, 근대식 교육을 위한 학교를 세우려 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친히 친필 교명과 편액을 내려줍니다.
'배재학당(培材學堂)'이 그것입니다.
'배재'(培材)는 '배양영재'(培養英材)에서 한 글자씩 따온 말로. '천하의 영재를 기르고 키워내라. 키워낸다'는 뜻입니다.
근대화를 향한 열망, 기울어가는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부활시키려 안간힘을 쓰던 고종의 염원과 좌절이 담긴 이름 아닌가 합니다. 배양영재. 배재.
'培材學堂' 고종의 친필 현판은 지금도 서울 정동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 배재(培材), 배양영재(培養英材)에서...아펜젤러 "우리는 자유 시민을 길러낸다"
배재학당 설립자 아펜젤러는 "우리는 통역관을 양성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길러 내보내려는 것이다"라며 유교적 구습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자유 근대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 목표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신문화의 요람, 신교육의 발상지. 천문, 지리, 수학, 화학, 영어 등 서양 과학지식과 근대 문명을 체화한 전인적 인간.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한 인재 배양.
그래서 배재의 역사는 우리 근대 교육의 시초일 뿐만 아니라 야구, 축구, 농구 같은 서양 체육의 도입, 발전사와 그 궤를 같이하는 우리 근현대 체육사이기도 합니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라는 교가 가사도 아펜젤러가 직접 작사한 겁니다.
교가 원곡은 미국 민요이자 전통 응원가라고 하는데, 'Son of a Gambolier'(건달의 아들)라는 곡의 멜로디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미국 대학 축제나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가로 원래 많이 불리는 곡이라고 합니다.
◇ 랄랄랄라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배재고 교가, 미국 대학 응원가에서 유래

후렴구 예의 그 '씨스뿜바'는 19세 후반 미국 대학, 특히 아이비리그 최고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서 많이 썼던 로켓폭죽응원구호 'Sis-boom-ah'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폭죽 도화선이 타들어 가는 '쉬이익?' 하는 소리, 공중에서 'Boom'하고 폭죽이 터지는 소리, '와~' 열광하는 소리들이 한국식으로 '씨스뿜바'가 된 겁니다.
랄랄랄라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 나가라, 가서, 폭죽처럼 장렬하게 터져라, 산화하라, 이기라. 금칠을 하자면 뭐 저런 정도의 뜻과 바람이 담긴 것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근데 체육의 산실이자 태동인 배재고, 1920년 제1회 전조선 야구대회 우승팀 배재고보 야구부, 그 배재고 야구부가 최근 아주 '대형사고'를 친 모양입니다.
'스벅 가야지' 파문입니다.
◇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배재고 야구부, 광주제일고 '스벅 조롱' 파문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누가 봐도 '5·18 탱크데이 마케팅'으로 '5·18 비하, 호남 비하' 전 국민, 온 나라의 질타를 받은 '스벅 사태'을 연상시키고 그 연장선의 조롱, 비하임이 분명합니다.
어떤 아이는 그냥 대놓고 "탱크데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탱크데이'라니, 그것도 6:2로 이기던 8회 초 공격 상황에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를 율동과 함께 반복적으로 외쳤다고 하니.
저 배재고 아이들이 스벅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진 차치하고. 저 말은.
'야, 광주제일고 것들, 곧 게임 끝이야, 너네 루저, 짐 싸서 광주 가, 가서 스타벅스나 가', 승자로서 최소한의 아량과 상대팀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는 단 1도 없는.
그야말로 조롱과 비하, 우월감에 쩐 낄낄거림 가득한. 화는 둘째 치고. 저 아이들의 선배로서, 참으로 참담하고 서글퍼지기까지 하는 말, 장면입니다.
◇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와 '랄랄랄라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 사이...괴리, 간극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랄랄랄라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
운과 멜로디는 같되, 지덕체 전인교육 그 정신은 온데간데없는, 정말 잘못 배운 행동입니다.
거기다 한두 번도 아닌데,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코치 감독은 뭘 하고 있었는지. 이걸 왜 제지하지 않았는지. 왜 그냥 귓등으로 듣고 있었는지. 유구무언일 따름입니다.
SNS를 타고 해당 영상이 확산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자 학교 측이 홈페이지에 '사과문'이라고 올린 모양인데, 이게 더 화를 키우는 모양새입니다.
"해당 학생 선수를 즉시 제지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일부 학생 선수의 부적절한 응원 구호로 광주제일고등학교 선수단과 학부모, 동문, 광주 시민을 비롯한 많은 분께 깊은 상처와 실망을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배재고 학교 측에서 올린 사과문 내용인데, 사건 축소 은폐 논란과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면 학교 측이 밝힌 '일부 학생'이 아니라 야구부 다수 학생이 같이 소리를 지르는, 율동까지 곁들인,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코치진이 이들을 '즉시 제지'했다는 학교 측 주장과 달리, 상대 팀 광주제일고 코치진의 거센 항의와 심판진까지 나선 뒤에야 뒤늦게 수습에 나선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거기다 광주제일고뿐만 아니라 광주 지역 동성고, 진흥고를 상대로도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파문이 일파만파 더 커지고 있습니다.
◇ 배재고, 사과문도 AI가 대필?...'이승만 건국 대통령' 논란까지, '일베재고' 조롱, 첩첩산중
'사과문'이란 것도 인공지능 AI 제미나이 워터마크가 삽입된 문건이어서 '사과도 AI가 대신하냐', '했네, 했어. 사과. 제미나이가' 이런 조롱과 비판도 쇄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배재고 학교 홈페이지에 '자랑스러운 배재인'으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소개하면서 '건국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써서 야구부를 넘어 학교 자체가 이른바 '일베 학교' 논란에까지 휩싸였습니다.
건국 대통령이라니, 임시정부 법통 부정, 헌법 부인, 일베 학교. 이런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베재고'라는 조어까지 나왔는데. 자괴감과 참담함이 동시에 듭니다.
이게 다가 아니고. 이른바 '자율형 사립고'인 배재고가 한 해 서울대를 몇 명이나 보내는지, 전국에서 몇 등인진 모르겠으나. 학교 홈페이지에 서울대 연대 고대, 이른바 'SKY' 대 합격자 수를 올려놓은 것도 논란과 성토를 받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래, 니 똥 굵다. 일베 학교여서 좋겠다'는 조롱과 냉소입니다.
흡사, 온통 한나라 군사들에 둘러싸인 적진 한가운데에서 사방에 처량하게 초나라 노래만 울려 퍼지는 사면초가(四面楚歌) 고립무원(孤立無援)입니다.
'일베재고'라... 일단 이승만 대통령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 이승만, 임시정부 법통 계승 분명히 밝혀...건국절 논란, 극우 세력들이 '이승만 이용'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독립협회 활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이승만은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에서 학사, 하버드대에서 석사, 프린스턴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우리나라 '1호 미국 박사', '1호 외국 박사'입니다.
생전에 '대통령' 칭호보다 '이 박사' 칭호를 더 아끼고 좋아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분열,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독재, 부정선거. 공과가 뚜렷하지만. '청년 이승만'은 남다른 데가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건국절' 논란은 지금 사람들이 그게 정치적인 이유가 됐든 헤게모니 싸움이 됐든 자기 필요와 입장에 따라 벌어지고 있는 일 아닌가 합니다.
이승만은 오히려 제헌국회 초대 의장 자격으로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우리는 헌법을 제정하고 대한독립 민주정부를 재건설하려는 것입니다"라고 '재건설'이라고 새로 수립될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제헌헌법 제정 당시 "3·1혁명에 궐기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세계에 선포했다"는 문구를 헌법에 넣자고 직접 제의한 바 있습니다.
적어도 건국절 논란은 이승만과는 무관하고, 건국절이나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하려는 시도는 극우들의 농단, 농간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사족을 붙이자면. '자랑스러운 배재인'은 이승만만 있는 게 아닙니다.
◇ 서재필, 주시경, 지청천, 여운형...배재 출신들, 근현대사에 굵은 '족적', '일베 학교'라니..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창립한 서재필. 봉오동전투 '전설의 독립군' 지청천 장군. 인민이 주인 되는 민주공화국을 꿈꿨던 건준 초대 위원장 몽양 여운형. '언문', '반절'이라 천대 멸시 받던 우리 말과 글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찾아준 주시경 선생 등등
근현대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름들입니다. 모두 배재 출신, 배재에서 공부하고 배운 사람들입니다.
서재필이나 지청천, 여운형, 주시경 선생이 오늘날 배재학당이 '일베 학교'라는 얘기를 듣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까마득한 후배로서 암담합니다.
'일베'로 대표되는 혐오와 멸시, 조롱과 차별, 배제.
왜 일베가 되는가. 왜 일베를 하는가. 심리적 사회적으로 여러 분석들이 있는데. 그 기저를 흐르는 공통적인 키워드가 몇 개 있는 것 같습니다.
불안, 분노, 억울함, 위선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저항, 그리고 '익명성'입니다.
◇ 박탈감, 불안, 분노...익명성과 결합, 뒤틀린 조롱 비하 왜곡으로 상대 혐오 공격
나도 사는 거 힘들다. 그런데 다 참고 견디고 산다. 버틴다. 근데 니들은 뭔데 '특별대접'을 받는 거냐, 받으려 하는 거냐. 니들이 도대체 뭔데.
이런 분노가 익명성을 만나면 특정 세력이나 집단, 지역, 정치인, 성.
가령 여성, 소수자, 호남에 대한 뒤틀린 비하와 왜곡으로 표출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홍어'니 '틀딱'이니 뭐니.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나 세월호, 장애인이나 여성 비하의 경우엔 더더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로.
그리고 고인 모독이나 타인에 대한 혐오를 도덕적 금기나 위선을 깨부수는 '유쾌한 반항'이나 '솔직한 악당'으로 서로 격려하면서 이른바 '일베충'이 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이미 사회병리학적 현상이 되어버린 이런 고인 모독이나 혐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혐오 표현 규제법'이나 해당 플랫폼이나 게시자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이른바 '금융치료' 등 여러 방안들이 거론되는데.
저는 '배재학당' 얘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배재고 교정에 '졸업생' 김소월 '진달래꽃' 시 비석
배재 학교 교정엔 제가 좋아하는 두 개의 '비석'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비(詩碑)입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은 1923년에 배재고보를 졸업한 배재 출신입니다.
'진달래꽃'은 졸업 한 해 전인 1922년 '개벽' 25호에 처음 발표됐고. 그해 12월에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 다른 시와 함께 동명 시집 '진달래꽃'으로 발간됐습니다. 32살로 요절한 김소월의 유일한 시집입니다.
배재고 교정엔 이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를 새긴 비석이 있습니다.
일베 얘기를 하다 진달래꽃 얘기를 한 건. '애이불비'(哀而不悲) 얘기를 하기 위함입니다.
◇ 애이불비(哀而不悲), 성찰 자기희생...일베 혐오 표현, 글 아닌 '배설'
애이불비.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는다.
일베 커뮤니티의 언어는 극단적인 조롱과 멸시, 비하, 혐오로 '언어'라기 보다는 그저 마구 싸대는 '배설'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냄새가 아주 고약한. 얼굴이 저절로 크게 찡그려지는.
그 이면엔 고립감과 상대적 박탈감, 좌절, 낙오에 대한 공포, 두려움, 분노와 결핍이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분노와 결핍이 상대에 대한 극단적인 조롱과 멸시, 혐오, 공격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습니다. 내 아픔과 결핍, 좌절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혐오'나 '공격' 같은 건 더더욱 당연히 없습니다.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상처를 냈을지라도 말입니다.
그저.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의 결핍과 아픔을 파괴적 혐오로 배출하는 것이 아닌 내면으로 성찰하고 배려와 희생으로 승화합니다. 나를 다독이고 상대를 배려하는 '성찰의 언어'입니다.
◇ 디지털 리터러시 공감교육, '혐오 문화' 해소...'진달래꽃' 관통 정서와 '일맥상통'
'진달래꽃과 일베 혐오 문제 해소가 뭔 상관이냐. 비싼 쌀밥 먹고 무슨 헛소리냐'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혐오 문화 해소 방안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이른바 '디지털 리터러시, 공감교육'입니다.
타인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 나의 아픔과 슬픔,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타인의 그것을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을 배우는 것.
좌절과 결핍, 분노와 두려움을 타인을 혐오하고 공격하면서 방어하는 것이 아닌 부족함과 아픔을 따뜻한 배려와 성찰의 언어로 서로 채워주는 것.
저는 그게 디지털 리터러시, 공감교육의 요체라 생각하고.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에 그 마음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이불비. 내가 슬프다고 남 더 아프게 하고 상처내려 하지 말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기쁨은 나누면 두 배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배재 교정에 있는 제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비석. 바로 배재학당 교훈을 새긴 비석입니다.
◇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 當爲人役)...배재학당 교훈,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 當爲人役)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배재학당 교훈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20장 26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에서 따왔습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욕위대자 당위인역. 이 교훈도 교가처럼 설립자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가 직접 지었다고 합니다.
이거는 따로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낙양의 지가를 올린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 서문에 써서 유명해진 말인데. 원문은 조선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쓴 글인데.
'알게 되고'를 '섬기게 되고'로 바꿔도 같지 않을까 합니다.
사랑하면 섬기게 되고, 섬기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전과 같지 않으리라.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에 혐오와 비하, 조롱과 멸시, 차별과 배제가 들어설 자리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배재고 야구부 '스벅 가야지' 파문과 논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코치 감독 사퇴', '교장 사임' 같은 얘기도 나오고. 온라인에선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을 향해서 '저렇게 인성이 글러먹은 저런 애들이 대학 가고 프로 가고 성공하면 안 된다. 다 잘라라. 절대 받아주면 안 된다'는 글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오늘(1일) 배재고 야구부에 대해 '6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고, 배재고는 현재 열리고 있는 청룡기 대회에서 자동 탈락했습니다.
야구부 팀에 대한 징계와 별도로 코치나 감독, 선수 개개인에 대한 징계 여부는 추가 조사를 진행해 스포츠공정위원회를 다시 열어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스벅 가야지'를 외쳤던 아이들을 그 아이들만 무조건 '조질' 생각도 없지만, 옹호할 마음도 없습니다. 어떤 조치들을 취하고 이뤄지는지는 지켜보겠습니다.
다만, 꼭, 배재고 야구부 아이들만 한정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일베 혐오 문화에 젖은, 젖어가는, 혹시 젖어갈지 모를 사람들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습니다.
◇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섬기러 왔다"...혐오도 사랑도, 뿌린 대로 뿌린 만큼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다. 배재학당을 설립한 헨리 아펜젤러가 한 말입니다. 욕위대자 당위인역. 크고자 하거든 섬기라.
사랑받고자 하면 사랑하고, 배려받고자 하면 배려하고. 뿌린 만큼 거두고 돌아오는. 뿌린 대로 거두고 돌아오는. 혐오를 뿌린 자리엔 혐오가, 사랑을 뿌린 자리엔 사랑이.
세상 이치가 그런 것 아닌가 합니다. 사족을 더 그리자면 저는 배재고를 다니면서 잠깐 '응원부'와 그리고 3년 내내 '문예부'를 했습니다.
앞머리에 적은 서울 동대문야구장 응원 모습도, 그리고 김소월 나도향 이런 배재가 낳은 문인들을 포함한 한국 근현대 시 소설을 읽고 '독서토론회'를 하고,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니 '역사란 무엇인가' 이런 책들을 읽고 뭘 얼마나 안다고 '세미나'라고 하던 그 시절이. 돌아보니 참 그립고 애틋합니다.
그런 배재가 '스벅 가야지' 파문에 '일베재고' 조롱까지 나오니. 예전 배재 학교 다닐 때가 주마등처럼 주욱 스쳐가면서 여러 생각들이 이어져서. 길게 적어봤습니다. 진달래꽃 애이불비, 욕위대자 당위인역. 지금까지 '유재광의 여의대로 108'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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