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화 의원: 네. 안녕하세요.
△유재광 앵커: 일단 인사말씀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청자들께.
▲서미화 의원: 네. 존경하는 시청자 여러분, 또 사랑하는 우리 전남·광주 특별시민 여러분, 또 전국에 계시는 호남 향우회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 정말 전남에서 태어나고 지금도 전남에서 살고 있는 전남광주특별시민 기호 4번 서미화 후보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유재광 앵커: 무안이 낳고 목포가 기른 호남의 딸,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고 계신데. 무안이 낳았다는 말은 출생이 무안인 거여서 알겠는데. '목포가 기른'은 어떤 말씀이신 건가요?
▲서미화 의원: 제가 이제 정치를 시작한 곳이 2010년도 목포시의회 의원으로 처음 진출을 해서 정치를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목포 시민들께서 제가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 주시고 함께해 주셨다는 감사의 말씀입니다.
△유재광 앵커: 그런데 뒤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지금 목포시의원 얘기가 나와서. 그 전에 장애인 인권운동을 열심히 하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치권으로 들어가야겠다 생각을 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뭐 어떤 걸까요?
▲서미화 의원: 이제 장애인 인권운동을 제가 하면서 늘 이제 밖에서 거리에서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고, 법도 만들어야 되고, 이런 조례도 있어야 되고, 이런 정책도 해야 된다. 이런 목소리를 막 내는데, 그게 반영이 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이제 하다 보니까 정치를 하게 되면, 정치인이 되면 이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치 법규도 만들고 입법도 하고 예산도 심의할 수 있는 이런 권한을 갖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안하고 투쟁하던 위치에서 결정하는 위치로 옮겨가서 속도를 좀 내야 되겠다. 이런 이제 결심과 합의가 있었던 거예요. 시민사회단체에서. 그렇게 해서 이제 정치에 도전을 했고. 당시 전남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비례 공천을 목포 지역위원회 위원장이셨던 박지원 의원께서 이제 저희 제안을 받아들여 가지고 저를 비례 공천 1번을 주셨던 거예요.
△유재광 앵커: 그러니까 그 전에는 뭔가를 요구하고 투쟁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그 요구를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리로 가기 위해서 정치에 들어오셨다. 그런 말씀인 건가요?
▲서미화 의원: 네. 맞습니다.
△유재광 앵커: 해보시니까 어떤가요? 정치.
▲서미화 의원: 이제 당시에도 제가 목포시의회에 진출해서 직접 많은 일을 했어요. 이제 당시 예를 들면 목포시의 저상버스가 시내버스 150대 중에 한 대밖에 없으니까 장애인들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굉장히 불편하고 어려웠던 것을 이제 조례를 만들고. 매년 시내버스를 교체하는 차량 대수가 나옵니다. 근데 이제 그 해에 버스를 17대를 교체한다고 하길래 제가 시장님한테 시정질의를 통해서 17대를 다 저상버스로 도입하게끔 이제 제안을 해서 그게 받아들여졌고. 조례에다가 모든 시내버스를 교체할 때는 다 저상버스로 바꾸게끔 그렇게 해서. 이제 점차 저상버스를 도입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교통수단이 노인 어르신들도 타기 좋고 아이들도 타기에 훨씬 안전하고.
△유재광 앵커: 목포가 제일 먼저 했나요?
▲서미화 의원: 이제 전남 지역에서는 가장 빠르게 저상버스 도입 대수가 증가됐죠. 그래서 다른 지역도 많이 따라서 하고.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런데 가령 장애인이 시위나 농성 같은 걸 한다고 하면은. 가령 서울 지하철 같은 거 이제 타고 내리고 그런 거 하면은 지하철 늦게 가고 막 무정차 통과하고 사람들이 지금도 싫어하는데. 그때는 조금 그런 게 더 뭐랄까, 선입견 같은 게 더 세지 않았었나요? 근데.
▲서미화 의원: 훨씬 장애인 차별이나 편견이 심각했죠. 지금도 뭐 별반 나아진 것은 그렇게
△유재광 앵커: 없나요?
▲서미화 의원: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은 우리나라가 굉장히 빠르게 해 왔지만,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이라든지 편견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은 앞으로 더 나아가야 될 과제가 훨씬 많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유재광 앵커: 결국 인식의 문제인데.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서미화 의원: 이제 법과 제도로. 장애인을 차별을 하거나 학대 문제가 있거나 이런 것들을 제한하고 처벌하고. 또 개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이런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죠. 그래서 2007년도에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에 관한 법률'이 처음으로 제정이 돼서 지금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 차별 시정 기구예요. 그래서 이제 그런 일련의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서 꾸준히 뭐가 장애 차별이다. 이런 것들을 우리 사회에 알려내는 활동도 제가 해 왔고. 또 그 과정에서 심각한 차별이 발생을 하면 진정을 해서 그것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제도 안에서 정책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이제 권고를 내리는 일이라든지. 이런 활동도 쭉 같이해 왔죠.
△유재광 앵커: 그러니까 틀과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의 인식도 같이 따라서 바뀐다는 말씀인 거네요?
▲서미화 의원: 그렇죠. 아무래도 이제 법은 이행해야 될 의무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법이 없으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면서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꿔 온 활동도 꾸준히 해 왔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런데 지금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만들자고 하면 그거 뭐 동성애 하자는 소리냐. 막 이런 분들 많잖아요. 아직도.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서미화 의원: 이제 그게 우리 한국 사회 수준 정도면 반드시 제정돼야 될 법률인데. 이제 종교단체 또 시민사회단체 또 범국민적인 어떤 충분한 합의 또 논의를 통해서 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은 저는 했어요. 실제로 종교계도 사람을 차별하자. 이건 아닐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근데 거기서 우려하는 점 그런 점들을 우리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어떻게 좀 더 담아내고. 담을 건 담고 또 양보할 건 양보할 건가. 이런 논의가 좀 필요한데 양쪽 진영에서 서로 만나서 합의하고 이런 절차나 과정은 상당히 미흡한데. 양쪽에서 자기주장이 극렬하게 나면서 이게 진전이 안 되고 있는 그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정치에서 이것도 논의를 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러니까 될 듯 안 될 듯, 안 되는 것들이 의외로 우리 사회에 참 많은 것 같은데.
▲서미화 의원: 국회에서 그것을 추진하려고 하다 보면 이제 서로 만나서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가 절실히 느끼는 게. 국회에서 뭔가 발의를 해요. 이제 차별금지법에 관련해서. 그러면 그걸 반대하는 입장에서 그걸 발의한 국회의원들한테 수십 통, 수백 통의 비난 문자가 한꺼번에 쏟아져 오고. 전화를 얼마나 하시는지 마비가 됩니다. 비서관들이. 그래서 그걸 엄두를 못 내는 이제 그런 입장도 있어요. 국회에서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충분한 토론의 장을 통해서 서로의 입장을 얘기해 보고. 이제 제가 생각할 때는 상당히 오해되고 곡해된 내용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보면. 근데 그것은 만나서 서로 대화를 하다 보면 '아 우리가 너무 좀 잘못 생각했구나' 하는 지점이 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아, 이게 좀 그러면 좀 다르게 표현을 바꾼다든가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좀 서로 상의하고 협의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저는 보여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도 그런 일련의 논의와 숙의의 과정을 통해서 좀 진행이 돼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재광 앵커: 옛날 '개그콘서트'에 김대희 씨, 신봉선 씨 나오던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갑자기 그게 생각나는데. 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 지금 기호 4번이신데. 민주당의 4번 타자를 자임하고 계신데. 4번 타자이신 건가요? 지금.
▲서미화 의원: 기호가 4번이 됐어요. 이제 제비뽑기로 번호를 뽑거든요. 예비경선에서는 제가 9번이었어요. 그때는 민주당을 구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4번은 홈런 타자를 또 상징하잖아요. 그래서 문제가 봉착되거나 뭔가를 해결해야 될 때 한 방에 홈런 타자 같은 해결사가 돼보고 싶다. 이런 의미로 4번 타자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유재광 앵커: 이제 진짜 고지가 코앞인데, 지금까지 전당대회 이렇게 선거운동 뛰어오신 소회나 감회 같은 게 있으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서미화 의원: 처음에 도전할 때 많은 분들이 염려를 하셨어요. 비례고 인지도가 일단 낮고. 또 전국 조직도 취약하고 이러고. 또 돈도 많이 든대요. 그런데 왜 나가려고 하냐. 좀 힘들지 않을까. 너무 고생한다. 이런 분들이 좀 몇 분 계셨고. 또 어떤 분들은 누가 나가겠냐. 서미화가 적격이다. 이렇게 추천하시는 분도 계셨는데, 저는 솔직히 집권 1년 막 지나고 지방선거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방선거가 수치적으로는 이겼지만 실제로 내용적으로 반드시 이겨야 할 서울을 이기지 못했고. 또 중심인 경남을 우리가 놓쳤고, 또 보궐에서도 평택이라든지 부산이라든지 중요한 요소를 놓치면서. 실제로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지역들을 탈환하지 못하면서 정치적 타격을 입은 내용적으로는 이겼다고 하기에는 매우 미흡한 지방선거 결과였다고 저는 생각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1기 지도부가 정확한 평가와 다음 선거를 준비하기 위한 비판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너무 우려스러웠고요. 그리고 이제 다 짐작하다시피 2년 후 총선뿐만 아니라 내년 4월에 서울시장 선거가 다시 있을 수 있는 지금 국면에 처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대로 이 지도부가 계속 이어진다면 서울시장 선거가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저는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근데 이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 정확하게 목소리를 내줘야 되는데. 누가 내지 않는 거예요. 그걸 내기 위해서 도전을 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전남 사람 아닙니까. 나라가 위태롭고 위기가 있을 때, 민주주의가 위험할 때 제일 먼저 나선 사람들이 호남 사람이잖아. 우리 전남·광주 사람들 뿌리를 보면 내가 아무리 위험해도 내 할 말은 한다. 이게 우리 전남·광주 특별시민들 또 우리 호남 향우의 정신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나가야지. 나라도 가서 할 말 해야지. 이런 좀 결심을 하게 됐고 또 제가 시각장애 여성이잖아요. 실제로 제가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갖고 계신 분들이 두렵지. 저처럼 별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잃을 게 없고. 사실 도전 자체만으로도 저는 성공 아니면 배움이다. 이럴 게 없다. 나는 실패할 일이 없다. 나는. 이제 그런 결정에 도달했어요. 제가 그래서 나가겠다. 이렇게 작심을 하고 결심을 한 거죠.
△유재광 앵커: 그런데 시각장애 말씀을 해 주셔서. 제가 이거는 여쭤보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운데. 이제 의원님 같이 수행해 온 비서관이 의원님 자세나,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시선까지 다 잡아주시던데, 이게 진짜 이렇게 좀 많이 불편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보이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좀 여쭤봐도 될까요?
▲서미화 의원: 여기서 앵커님이 안 보입니다. 소리를 보고 이렇게 소리 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고. 이 정도 거리에서는 안 보이고요. 그냥 이렇게 소리로 '저 지점에 계시겠구나' 하고 이제 바라보고 있는 거고, 이제 여기 내 앞에 이게 책상이구나. 이거는 눈으로도 보지만 만져보면서 또 아는 거거든요. 의자하고. 그리고 이제 이게 지금 내가 인식을 하면 다음에는 이 책상이 다른 데로 옮겨지지 않는 이상은 여기에 책상이 있었지 라고 인식을 하면 보여요. 이 가까이서. 근데 이제 처음 장소에 가면 잘 안 보이니까 부딪히기도 하고. 그런데 만져보고 해서 내가 인식을 하면 보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전맹'이 아니에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는 아닌데. 약간의 주변 시력이 살아 있기 때문에 인식을 하면 좀 더 익숙하게 보이는 것처럼 제가 인식을 합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바뀌지 않는 공간들. 이런 건물 안에 화장실 위치, 사무실 위치, 이런 것은 안 바뀌잖아요. 그러니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익숙해지면 혼자도 화장실 가고. 혼자 사무실에서 뭐 책상 위치, 의자 위치에서 제가 앉아서 하고. 이런 것들이 이제 익숙해지면 자연스러워지는 그런 정도 시력이 있습니다.
△유재광 앵커: 저는 그런데 사실 들으면서, 엄청 놀라면서 듣고 있는데. 너무 밝은 얼굴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데.
▲서미화 의원: 이제 뭐 눈이 안 보여서 너무 슬프다, 억울하다, 서럽다. 이런 것들은 제가 청소년 시기에, 중2 때부터 책을 못 봐서, 쭉 대학까지 들으면서만 공부를 했어요. 그 시절에는 정말. 일단 성격은 타고난 게 제가 밝습니다. 굉장히 긍정적이고. 근데 눈이 안 보이는 것 때문에 불편한 현실에 딱 맞닥뜨릴 때는 너무 억울하고 슬픈 거예요. 그래서 시험을 볼 때는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제가 억울해 가지고. 난 진짜 공부 잘하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이 와서 자기 시험 보고 빨리 달려와서 내 시험지를 읽어줘도 중학교 때부터. 중학교 시험이 45분 수업이었어요. 그러면 다른 친구들이 삼십 분은 시험을 보고 나한테 오잖아요. 그럼 남은 시간 10분 동안 나는 국어시험을 다 봐야 돼 그래가지고. 나 너무 억울해 막 이러면서.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거야. 이런 호소를 많이 했어요.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는데. 이제 그런 것들을 늘 이제 문제가 있어. 바꿔주세요. 읽어주세요. 이렇게 하면서 굉장히 단단해졌어요. 제가. 그리고 또 실제로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면서 눈이 나빠진 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근데 왜 내가 다 책임을 져야 되느냐. 국가가 책임을 져야 된다. 이제 이런 인권적 차원의 입장을 끊임없이 주장하면서 굉장히 당당해지고 씩씩해진 겁니다.
△유재광 앵커: 팍 느껴집니다. 당당하고 씩씩한 게. 전당대회 이렇게 현장 돌아다니면 어떤 말씀 가장 강조해서 하시고, 어떤 말씀을 가장 많이 들으시나요? 이제 어떤.
▲서미화 의원: 일단 저 개인적으로는 서미화 진짜 너무 다부지다. 이런 말씀해 주시면서 이재명 대통령 지켜달라. 이재명 정부 성공하게 꼭 뒷받침해야 된다. 그리고, 고맙다. 그렇게 나서줘서 너무 고맙다. 이 말씀 너무 많이 해 주시고. 끝까지 초심을 변치 말고 이재명 정부 뒷받침하고 이재명 대통령 지켜주고 우리 정부 성공할 수 있게 역할을 해 달라. 이 말을 가장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유재광 앵커: 김용 후보랑은 엄청 친하신 모양이네요. 이렇게 전당대회 입장하실 때 보면 두 분이 꼭 이렇게 손잡고 들어가시고, 그리고 페이스북 보니까 '나의 동지, 우리의 동지, 이재명 대통령의 동지, 김용 후보를 압도적으로 밀어주십시오.' 이런 말도 써놓으셨던데. 본인 선거운동하기도 지금 바쁘신 거 아닌가요? 김용 후보까지.
▲서미화 의원: 이제 우리 김용 후보님은 평당원으로 지금 본선에 진출했거든요. 이런 적이 별로 없을 거라고 저는 알고 있는데, 이제 시각장애 여성이 도전한 것도 역사적으로 처음인데. 평당원이 이렇게 진출을 했고. 지금 간당간당 5등에 있어요. 5명까지 들어오는데.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과 어떻게 보면 거의 한 몸처럼 정치의 현장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같이 함께 동지애를 가지고 생사를 넘고 넘은 그런 분으로 저는 알고 있어서. 김용 후보님이 최고위원에 들어오면 정말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에 손발이 너무 잘 맞을 것 같아요. 그리고 평당원을 대변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도부가 다 국회의원으로만 이렇게 구성이 되면 평당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대변하는 이런 목소리가 좀 취약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김용 후보님이 지도부에 들어오면 훨씬 우리 지도부가 좀 더 우리 당원들을 대변하고. 그러면서 좀 더 깊이도 깊어지고 폭도 넓어질 수 있는 그런 후보가 우리 김용 후보가 아니겠나 싶어서 제가 응원을 열심히 하고 있고요. 또 이 지도부 자체가 지금 우리 이재명 정부 2년 차 막 진입하면서 제일 지금 우리가 노심초사하는 것이 이재명 대통령은 그렇게 속도를 내면서 국정과제를 어떻게든 국민만 바라보면서 해보려고 하는데 이 속도를 맞춰야 돼요. 그러면 정말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를 눈빛만 봐도 이해가 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그런 사람이 정말 김용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유재광 앵커: 그런데 이런 말씀도 적어 놓으셨던데 '2030 정권 재창출, 당정청 완벽 원팀의 마지막 퍼즐. 명청대전 완전히 끝내야' 이렇게 적어놨던데. 이번 전당대회를 좀 전에도 말씀을 해 주셨지만, 기본적으로 '명청대전'으로. 정청래 대표에 대한 일종의 심판 비슷하게 보시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서미화 의원: 이제 정청래 대표님이 지난 1년 동안 내란종식 검찰개혁 그런 슬로건을 걸고 정말 역할을 잘 해 주셨고. 이제 기소권 수사권이 분리됐고. 심지어 보완수사권 폐지까지도 다 돼서. 검찰 개혁은 이제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우리는 집권여당이잖아요. 집권여당으로서 뭔가 통합하고 협치를 이루고 그러면서 민생 입법들을 이렇게 추진할 수 있어야 된다고 보는데. 그 점은 매우 취약했다. 처음 취임한 날부터 국힘당 대표하고 악수도 안 하셔 가지고 막 뉴스에 많이 났잖아요. 그런데 집권여당 대표는 개인을 대표하지 않잖아요. 좀 더 확장하고 포용하는 건 좀 미흡하다고 보여져요. 그래서 그동안 1년 동안 너무 수고하셨고 잘하셨으니까. 이번 이제 2기 지도부는 이재명 정부를 잘 뒷받침하고 엇박자 없이. 그리고 좀 더 포용하고 확장하는. 그래야 2년 후 총선 승리가 가능해지는 거예요. 우리 지지층만 가져갖고는 도저히 50% 안 넘어요.
△유재광 앵커: 정청래 대표가 다시 되면 총선을 150개 넘기기가 어렵다고,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보시는 거네요?
▲서미화 의원: 그 점도 저는 그렇게 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처음에 시작할 때 어땠냐 하면 64에서 68~9% 되는 국정 지지율을 업고 시작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여론이나 언론이나 심지어 우리 민주당도 저 같은 국회의원들 또 민주당 지도부까지도 15대 1로 예측을 했어요. 지방선거 결과를. 근데 그게 12대 4라는 이제 결과를. 기대에 미치지 못한 거죠.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서울을 우리가 탈환을 못 한 거예요. 너무 좋은 조건에서 시작한 선거가.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 대체불가 대한민국. 정말 AI는 대한민국 없이는, 반도체는 대한민국 없이는 안 되는 이런 대형 글로벌 프로젝트를 지금 선포하고 진행 중이잖아요. 그리고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기대하면서 대한민국을 향해서 지금 다 다가오고 있는데. 5년 대통령 임기로는 이것을 성공적으로 성과를 완벽하게 내기는 짧은 시간인 거예요. 반드시 정권을 재창출해서 10년 정도는 우리 민주당이 이 글로벌 메가 프로젝트를 완성을 시켜야 된다. 저는 그런 입장에서 너무 절박합니다. 총선 승리, 정권 재창출은 우리에게 우리 민주당에게 대한민국의 운명을 걸고 요구되고 있는 시대정신이라고 저는 보고 있어요. 너무 절박해. 오죽하면 내가 나와버렸겠어.
△유재광 앵커: 김용 후보하면 저는 무협지를 되게 좋아해서. 그 중국 무협 작가 김용이 생각나는데, 자동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릴 마지막 카드, 우리 용이 김용 후보' 이렇게 써놓으셨던데 이게 김용 '사조영웅전'에 보면 두 주인공이 곽정 황용인데 곽정이 만날 황용을 '용이, 용아' 이렇게 부르는데. 의원님 '우리 용이' 그거 보면서 저는 한참 속으로 웃었는데. 김용 후보 귀가 간질간질할 것 같은데. 김용 후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서미화 의원: 그러셨구나. 용아 힘내라. 할 수 있다.
△유재광 앵커: 그리고 지난 12·3 윤석열 비상계엄 때, 내란 계엄 때. 거의 제일 먼저 국회로 가서 의원님도 담을 넘어서 가셨다고. 그러고 담 넘어서 가시자마자 국회의장 의사봉이랑 의장석을 사수하셨다고 들었는데. 이거는 그걸 어떻게 그렇게 하실 생각을 의사봉이랑 의장석 자리 챙겨야지. 그 생각을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그때.
▲서미화 의원: 저는 정말 우리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우리 호남이 전남·광주가 5·18을 버텨내면서 5·18 정신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 왔잖아요. 현대사에서 볼 때. 근데 진짜 윤석열이 22년도에 취임할 때부터 저는 저 양반이 뭔 사고를 쳐버릴지 모르는 너무 위험한 존재로 보여졌어요. 제가 22대 국회에 들어온 이유가 윤석열 끌어내리려고 들어온 것도 있습니다. '계속 대통령 5년 했다간 우리나라 망할지도 몰라야' 이런 생각이 좀 들었거든요. 그랬는데. 진짜 아니나 다를까. 제가 국회 운영위원회 상임위를 겸직으로, 보건복지위원회와 운영위를 같이 했어요. 24년 바로 들어가서부터 그래서 대통령실을 제가 국정감사를 하게 되거든요. 오물 풍선이 몇백 개가 날아오는데 그것을 못 잡고 국회 마당에까지 떨어지고. 이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걸 안 막고 있어요. 군인이.
△유재광 앵커: 일부러 그랬다는 말씀인가요?
▲서미화 의원: 저는 일부러 그런다는 의심을 갖고. 그 질문을 막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이제 온갖 오물 쓰레기 심지어 인분까지 담겨져 가지고 상수도 주변에 600개 정도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제가 너무 걱정이 돼서 그 부분을 집중 질의를 하면서. 아니 지금 북한이 이렇게 하고 있는데 물었는데. 그 당시 신원식 안보실장이 하는 소리가 무슨 대포를 쏴갖고 그걸 막는다고. 그러면 그건 전쟁하자는 말이잖아요. 무슨 요격 무슨 포를 쏜다고 그랬어요. 그래 내가 너무 황당해가지고, 너무 열을 받아가지고. 아니 무슨 계엄 선포하려고 전쟁 상황 만들려고 할 일이 있냐 그랬더니. 막 안보실장이 막 열을 내면서 저한테 막 무슨 계엄이냐고 엄청 반응을 과격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시간이 밤 12시, 1시 넘었을 때인데. 제가 그때 진짜 얼마나 분노해 가지고 막 싸우고 했는데. 그러니까 항상 제가 의심을 하고 있었죠. 언젠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그때 당시 우리 지금 대표 후보로 나오신 김민석 후보께서 저랑 같이 운영위였어요. 저하고 김민석 총리님이 계엄 얘기를 했어요. 24년 국정감사 때. 그랬는데. 이제 12월 3일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니까. 올 게 왔구나. 저는 '이게 뭔 일이야' 이거보다는 '올 게 왔네. 이 미친' 막 욕이 막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바로 국회 앞으로 갔는데. 이미 이제 문이 잠겼길래 문을 이렇게 만져보니까 틀이 이렇게 동글동글한 게 이어져 있어요. 그러면 이렇게 발을 끼면 올라갈 수 있단 말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발을 끼고 막 올라갔죠. 그래 가지고 이제 철담을 넘고 달려가면서 제가 생각하는 게 분명히 국힘당이 한 통속일 것이다. 그러면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할 거라는 그런 생각이 저는 들었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방해를 한다면 의장석하고 의사봉을 갖고 도망가지 않을까? 이 생각이 들어서 제가 본회의장 들어가자마자 의장석으로 막 달려가 가지고 의장석에 딱 앉아서. 나를 내 몸을 만지기만 해봐. 이러면서 이제.
△유재광 앵커: 몇 시간 동안 국회의장 하셨네요?
▲서미화 의원: 네. 그때 제가 한 11시 막 넘어가선가 그전엔가 도착, 11시 좀 넘었던 것 같아요. 도착해 가지고 의장님 오실 때까지 12시 반 뭐 이런 정도까지 한 시간 한 반 정도 의장석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재광 앵커: 아니 그런데 그 상황에 계엄 그 황당한 상황에. 진짜 의장석에서 계엄 해체 본회의를 주재해야 되니까. 의사봉도 필요하고 두들겨야 되니까. 그거를 확보할 생각을 했다는 게. 저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서미화 의원: 우리 전남광주특별시민들 또 호남인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면 막 몸이고 뭣이고 안 가리고. 가진 거 없어도 있는 거 없는 거 다 털어서 나눠 먹고. 진짜 목숨 걸고 대한민국 지키는데. 개인적인 사정보다 그런 데 앞장섰던 이런 우리 전남·광주의 정신이 제 몸에 딱 배어 있는 것 같아요. 내 계산이 별로 없어, 우리 전남 사람들은 굉장히 정의롭고. 또 옳다고 생각하면 내 거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좀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그런 뚝심이 있잖아요. 맞죠? 우리 시청자 여러분 맞다고 생각하시죠? 제가 좀 그런 정신을 뿌리 깊게 갖고 있는, 호남의 자랑스러운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런 데서 나온 행동 아닐까 싶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러니까 역경에 맞서서 본인의 의지로 본인이 옳다고 하는 거를 평생 해오셨으니까. 진짜 말씀하신 대로 5·18 정신이 몸에 배어서 체화가 돼 있으신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그런데 욕을 말씀해 주셔서. 지금 최고위원 경선 같이 뛰고 있는 임미애 의원이 그 당시에 의원님이랑 같이 계셨던 모양인데. 그렇게 의원님이 욕을 해댔다고 하는데.
▲서미화 의원: 저는 그 상황을 잊어 먹었어요. 그런데 임미애 의원님이 어디 방송에 같이 나가게 됐는데. 자기가 살면서 생전 못 들어본 욕들을. 그때 나를 잡고 같이 본회의장으로 뛰었거든요. 담 넘을 때 먼저 넘어가서 기다리시고, 저를 같이 받아주시고 해가지고 같이 뛰었던 동지거든요. 근데 임미애 의원님이 그 말씀을 하셔서. 이제 이게 욕이라기보다 이제 나의 분노의 심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표현으로. 제가 좀 막 저절로 막 막 XX가 막 나오더라고요.
△유재광 앵커: 그때는 그걸 그렇게 하고 계시는지도 의식을 못 하셨던?
▲서미화 의원: 예. 그럴 정도로. 이제 본회의장 들어가서도 제가 막 혼자 막 혼잣말로.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막 이럴 수가 있냐. 막 이런 진짜. 이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될. 그리고 나중엔 헌재에 나와서 윤석열 씨가 얼마나 핑계를 대고 부하를 탓하고 말도 아닌. 저게 말이여 뭣이여 할 때 제가 복장이 터져서. 이제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서 제가 컸거든요. 우리 할머니가 그렇게 욕을 잘 하셨어요. (전수를 받으신 건가요.) 이제 제가 그거를 배워서. 제가 평소 욕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진짜 '우리 할머니가 있었으면 저 윤석열한테 뭐라고 했을까' 이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우리 할머니 같으면 참 저놈의 진짜 주둥이를 '조사부렀을' 거라고. '조사부러야 한다'는 말을. 우리 국민들이 너무 시원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유재광 앵커: 이제 16일이면 당 지도부가 결정이 되는데. 최고위원이 되시면, 될 것 같은데. 어떤 역할,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 총선 승리 말씀해 주셨는데.
▲서미화 의원: 제일 먼저는 진짜 우리 전남광주특별시에서 시작되는 3대 메가 프로젝트가 빨리 시작이 되면서 성과가 나야 돼요. 이재명 정부에서. 할 수만 있다면 3년 이내에 우리 호남에서 만들어진 반도체가 전 세계로 수출돼야 된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께서도 최근에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선포하시면서 연내 '메가 프로젝트 특구 특별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된다고 하셨거든요. 이건 국회가 할 일이잖아요. 그것을 바로 뒷받침해서 준비해서 입법 통과시키고. 광주· 전남에서 시작되어지는 인프라 구축. 이런 반도체, AI 데이터 이런 거는 인프라가 먼저 구축이 돼야 기업이 실제로 일을 시작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역할을 빨리 할 수 있게 역할을 하겠고. 그러려면 사실 우리 대통령께서는 새벽 2시, 3시까지 안 자고 고민하고. 막 얘기하시잖아요. 그러면 저는 우리 민주당 지도부도 2시, 3시까지 잠 안 자고 같이 연구하고 만들어내고. 그렇게 해야 된다고 봐요. 지난 윤석열 내란 정국 때 박찬대 원내대표가 1기 원내대표였어요. 제가 그때 원내 부대표였습니다. 우리 잠 안 잤습니다. 지금 그 시국과 같이 우리가 긴장을 하고. 우리 이재명 정부 성공을 하게 하려면 그렇게 긴장감 있게 잠도 줄이고 일을 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뒷받침할 것이고. 또 무엇보다도 저는 5·18 정신을 헌법에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된다는 게 제가 최고위원 출마 선언할 때 저의 공약으로 제시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것도 이제 국회의장님하고 얘기해서 여야가 TF를 꾸려서. 다른 것은 그러면 다 내비두더라도 윤석열 대통령 시절에도 동의를 한 내용이에요. 그것이. 그것만큼은 하고. 내란이 다시는 불법 비상계엄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비상계엄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장치, 제한을 할 수 있는 장치까지는 개헌을 통해서 담아야 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해내야 되겠다 생각하고 있고. 또 무엇보다 저는 시각장애 여성이잖아요. 그래서 우리 사회적 약자들, 장애인, 노인, 여성, 청년. 또 제가 전국을 다니다 보니까 지금 농어민들 비가 안 와가지고 우리 전남 이쪽 광주 이쪽은 비가 안 와서. 섬 지역 이런 데는 식수조차도 좀 곤란한 이런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어민들도 사실 우리 사회에 굉장히 굉장히 사각지대에 놓이는 상황이 지금 발생을 하고 있는데. 농어민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먹고 사나, 식량이 다 농어민 때문에 나와요. 그러면 이건 국가가 1순위로 농업인들의 고충과 어떤 정말 힘든 이런 상황들을 정책과 제도나 예산을 통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런 목소리. 그리고 또 소상공인 그리고 지금 전남 지역만 해도 인구 소멸 지역 시군이 22개 시군 중에 지금은 이제 통합특별시가 됐는데. 인구 소멸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17개 시군으로 알고 있어요. 이쪽에서 버티고 있는 국민들은요 모든 게 불편해. 교통, 교육, 의료, 이런 것들이. 그럼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분들이 떠나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인구 소멸 지역을 국가균형발전을 통해서 사람이 떠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청년이 찾아오는 도시로 만들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대변을 제가 충실하게 민주당 지도부에서 하면 핵심 의제로 만들어 갈 수가 있거든요. 당론으로 만들어서. 이런 것들도 속도감 있게 입법이라든지 정책을 만들어서. 결국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민주당,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그래서 결국 모두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시는데. 민주당도 핵심 지지층의 당이 아니라 모두의 민주당이 돼야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확장을 해야 결국 총선 승리로 갈 수 있다고 보거든요. 제가 그 역할을 민주당 중앙에서 정말 꼼꼼하게 하겠습니다. 부지런하게 하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유재광 앵커: 뭔가 할 일이 엄청 많으실 것 같은데. 진짜 주무실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요. 이거 다 하시려면.
▲서미화 의원: 제가 2년 임기 동안은 진짜 4년같이, 6년 같이 쓸 작심을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유재광 앵커: 슬로건으로 내거신 '희망을 미래로, 배제 없는 모두의 민주당' 이게 그런 말씀이신 거네요. 지금 말씀하신.
▲서미화 의원: 그렇죠. 사실 제가 도전한다고 할 때 많은 저의 동지들, 시민, 인권 운동, 장애인 인권운동에서 함께 운동을 했던 장애인들이 전화를 많이 해 오셨어요. 그러면서 무슨 말씀을 하셨냐면 다른 거 생각이 안 들고. 서미화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다른 여성이 아니고. 그때 당시는 여성 몫으로 겨우 들어간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다른 여성이 아니고 '서미화'라는 시각장애 여성이 최고위원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흥분이 된다고 하더랑께요. 너무 막 희망이 된대요. 자기들이 막 흥분했어요. 너무 좋아하시면서 상상만 해도 희망이 된다. 너무 잘했다. 도전해 줘서 고맙다. 그러면서 '별'이래요. 저한테. 별이다. 우리 장애계의 별이다. 그래서 제가 그 격려를 받으면서 저도 감동을 받았고. 아, 정말 이렇게 나 한 사람의 어떤 선택과 결정과 도전이 우리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어 저한테도 정말 눈물겹도록 감동이었어요. 그리고 너무 힘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진짜 더 다짐을 했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봐야 되겠다. 그렇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 책 제목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인가,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나는데. 저희가 시간이 다 돼서. 그래서 정치인 서미화가 만들고 싶은 세상, 가고 싶은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마무리 말씀 겸해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서미화 의원: 네. 저는 평생을, 시각장애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맞서서 이렇게 세상을 바꿔보려고 노력해 왔던 시각장애 당사자 여성이에요. 근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 장애인, 또 성소수자, 여성, 농업인 차별이 심각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더딘 것 같지만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 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공정한 기회. 그리고 차별이나 배제가 없는 사회. 그래서 보통의 시민으로 누구나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회를 꼭 만들고 싶습니다. 휠체어 중증 장애인들이 지하철 시위를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일상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회는 사실 우리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더 편안한 행복한 사회가 되는 것 아닙니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호남 향우회 여러분, 전남·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 같이 한 목소리 함께 내서 보다 나은 사회, 보다 평등한 사회,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재광 앵커: 왠지 정치권에서 오래 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의원님을 제가. 시간이 다 돼서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미화 의원: 고맙습니다.
△유재광 앵커: 지금까지 서울광역방송센터에서 서미화 민주당 의원과 함께 전해드렸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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