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난 동료 곁으로"..5.18 시민군 임성복 씨 별세

    작성 : 2021-12-25 20:42:37

    【 앵커멘트 】
    5·18 당시 동료들의 시신과 옛 도청을 지켰던 시민군 임성복 씨가 지난 주 영면했습니다.

    트라우마 때문에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시민군 활동 사실을 지난 5월, 저희 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는데요.

    안타깝게도 유공자 등록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5·18민주묘지에 잠들지 못했습니다.

    고우리 기자입니다.

    【 기자 】
    명패도 없이 서랍장 같은 봉안당에 안치된 5·18 시민군 故 임성복 씨.

    80년 5월, 낮에는 총을 들고 계엄군에 맞섰고 밤에는 전남도청에서 동료들의 시신을 지켰습니다.

    살아 생전 동지들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죽어서도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유공자 등록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동료들이 잠들어 있는 5·18민주묘지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 인터뷰 : 임이랑 / 故 임성복 씨 딸
    - "이러한(시민군 활동) 사실을 제가 처음 알았을 때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 그것 때문에 슬펐어요. 자식으로서."

    그가 남긴 메모에는 당시 20대 청년 시민군이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트라우마로 괴로워했던 고인은 40년 동안 숨겨왔던 시민군 활동을 최근에서야 방송에 털어놨습니다.

    ▶ 인터뷰 : 故 임성복 / 2021.05.13
    - "저녁마다 처음에는 잠잘 때 식은땀이 벌떡벌떡 나고 TV에서 5ㆍ18 내용이나 그런 소식을 들으면 아프고 머리가 서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동료들의 죽음을 뒤로 하고 살아 남았다는 마음의 짐은 딸이 건넨 위로를 듣고서야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 인터뷰 : 임이랑 / 故 임성복 씨 딸
    - "아빠 그때 나오길 잘하신 거니까 같이 있었던 분들한테 미안해할 거 하나도 없어. 그리고 아빠가 해야 할 일 있잖아. 못했던 일 내가 할게."

    평생 5·18의 아픔을 견뎌온 고인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세상을 등진 시민군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 인터뷰 : 故 임성복 / 2021.05.13
    - "제가 이런 말을 한 것도 한 3년 됐을까? 가족들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봤냐 그런 말을 들을 때 아 이게 맞겠구나 내 스스로도 치유를 해야지 내 마음을 닫혀버리면 안되겠구나"

    kbc 고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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