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난 화약고' 스페인…87세 노인 강제퇴거에 '수만 명' 거리로

    작성 : 2026-09-28 17:05:06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주택난에 항의하며 야영 시위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스페인에서 87세 노인의 강제퇴거를 계기로 주거난에 대한 여론이 폭발해 수만 명이 거리 시위에 나섰습니다.

    AP, AFP통신에 따르면 시민 수만 명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수도 마드리드 시내를 행진하며 주거비 인하와 세입자 보호 조치를 정부에 촉구했습니다.

    시민들은 마드리드 번화가인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약 100개의 텐트를 설치해 26일 밤을 지새웠습니다.

    27일 밤에는 가족 단위를 포함한 더 많은 시위대가 야영 시위에 합류해 스페인의 주택 위기를 규탄했습니다.

    이번 시위는 87세 할머니 세입자가 주거지에서 강제 퇴거당한 일로 촉발됐습니다.

    마드리드의 부촌인 레티로 지구에서 70년 넘게 거주해 온 마리아 델 카르멘 아바스칼은 지난 23일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온 후 들것에 실려 나갔습니다.

    퇴거 현장의 영상이 스페인 전역에 퍼지면서 그간 주택 임차료나 주택 매입 비용 상승에 부글부글하던 여론의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마드리드 세입자 연합에 따르면 아바스칼은 그의 부모 시절부터 지금까지 70년 넘게 이 아파트의 세입자로 살아왔습니다.

    2018년 건물의 소유주가 바뀌었고 아바스칼에게 아파트를 매입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그의 경제적 여건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해당 아파트를 매입한 부동산 투자 회사는 그의 월세를 기존 500유로(77만 원)에서 2,650유로(410만 원)로 대폭 올렸습니다.

    추후 조정을 통해 월세를 1,650유로(255만 원)로 낮췄으나 이 역시 아바스칼의 연금으로는 불가능한 금액이었습니다. 결국 아바스칼은 평생을 살아온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강제 퇴거 후 병원에 입원한 아바스칼은 26일 세입자 연합을 통해 "내게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겐 일어나지 않도록 이 일이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자기 사례가 관련 법 개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세입자 연합은 소셜미디어에서 "더는 견딜 수 없다. 임대 시스템이 무너지든 정부가 무너지든 둘 중 하나"라며 시민들에게 시위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의 '임대료 탐욕을 끝내자'라고 적힌 현수막 [연합뉴스]

    26일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주택 시장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성토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38세 그래픽 디자이너 엔리케 오르테가 데 미겔은 AFP에 "감당할 수 있는 집을 찾는 것 자체가 고생인데, 그마저도 쫓겨날까 봐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룸 넥스트 도어'로 2024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상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도 광장에 나왔습니다.

    그는 스페인 공영방송 RTVE와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마지막 방아쇠였다"라며 현재 스페인의 주택 상황은 "절대적으로 견딜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스페인 주요 도시에서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더해 관광 산업 확대에 따른 단기 임대 전환, 인구 유입, 여기에 외국인 투기까지 겹쳐 집값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마드리드 부동산 업체 '이데알리스타'는 지난 10년 동안 월세가 거의 두 배로 오른 것으로 추산합니다.

    스페인청년협의회(CJE)는 청년 노동자의 경우 월급의 98.7%를 집값으로 써야 하는 실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스페인의 주택 문제는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쟁점입니다.

    사회당 소속의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27일 사회당 집회에서 아바스칼의 사례를 거론하며 "정부는 주택 관련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라고 여론 진화에 나섰습니다.

    산체스 총리가 언급한 법안엔 임대차 계약의 자동 갱신 및 퇴거에 대한 추가 제한 조치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사회당이 의회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법안 통과는 불투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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