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를 아는 순간 비로소 시작되는 것들

    작성 : 2026-11-04 11:29:48 수정 : 2026-11-04 16:50:21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청년들의 하루는 불안하다.

    어렵게 취업의 문을 통과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결정하거나, 다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또래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치열하게 준비해 들어간 자리에서조차 우리는 왜 쉽게 흔들리는 걸까.

    그 이유를 단순히 역량이나 열정의 부족에서 찾을 수는 없다.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안 정작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충분히 던져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따라왔지만, 그 길이 나에게도 맞는 길인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고민은 진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얼마 전 인간관계를 정리하면서 문득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나는 어떤 순간에 행복할까. 어떤 상황에서 상처받고,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조차 나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성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알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전환점이 된 것은 청년정책 프로그램 참여였다. 광주청년일자리스테이션 동명에서 진행한 애니어그램과 핵심감정·핵심욕구 검사, KOLB 학습유형 진단 등에 참여하며, 흔히 접하는 MBTI를 넘어 내 성향과 감정, 학습방식을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검사와 해석을 통해 무심코 지나쳤던 내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핵심감정이 '그리움', 핵심욕구가 '연결'이라는 결과였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곱씹어 볼수록 지나온 관계와 선택들이 떠올랐다. 나는 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유독 마음을 많이 썼을까. 왜 어떤 상황에서는 쉽게 지치고, 또 어떤 순간에는 큰 힘을 얻었을까.

    그동안의 감정과 행동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사람들과의 정서적 연결이 중요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율적인 환경도 필요했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어떤 환경에서 나답게 지낼 수 있는지 알게 되면서 삶을 바라보는 기준도 한층 또렷해졌다.

    물론 몇 가지 검사만으로 나 자신을 모두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모르는 모습이 많고, 때로는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흔들릴 때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하고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신경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청년들에게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흔히 청년정책이라고 하면 취업이나 창업 지원 같은 실질적인 지원부터 떠올리지만, 그에 앞서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탐색할 기회도 필요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과정이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관계를 돌아보거나 새로운 도전에 나설 용기가 될 수도 있다. 자기 이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선택의 순간에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청년정책 역시 가시적인 취업률 성과를 넘어, 청년들이 스스로를 탐색하고 삶의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

    단순한 성향 검사에 그치지 않고 상담과 진로 탐색, 다양한 경험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이 마련된다면 청년들에게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남들의 속도에 맞춰 달리느라 정작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더 빨리 달릴 방법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해 볼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를 안다고 해서 모든 길이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그 출발점은 조금 더 분명해진다.

    결국 나에게 맞는 길을 찾는 일은 '나'를 알아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본 기고는 KBC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정혜지(광주청년일자리스테이션 동명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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