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80년 오빠의 일기...."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미안"

    작성 : 2020-05-16 19:45:12

    【 앵커멘트 】
    80년 5월 당시,거리에서 나서 민주화를 외치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시민군과 함께였던 우리이웃들의 이야기, 전해 드리고 있는데요.

    참혹한 현실이 두려웠지만 차마 진실까지는 외면할 수 없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고우리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 기자 】
    40년 전 5월, 동생 네 명과 부모님 그리고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딸의 가장이었던 김용균 씨.

    전남여고에 다니던 여동생을 마중 나갔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 인터뷰 : 김용균
    - "20일에서 21일 넘어가는 저녁에 들렸던 그 엄청난 총소리. 수천수만 발의 총소리. 시신을 싣고 가는 트럭.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트럭에 실어서. 그걸 시민들이 보고 울부짖는 광경을 보고"

    조심스레 기억을 더듬어 왠지 불길했던 비상 계엄 뉴스를 본 순간부터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일기에 꼼꼼히 담았습니다.

    소리 내 민주화를 외치지는 못했지만, 가슴 한켠에 자리잡은 그날의 진실까지는 차마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자리를 찾아 광주를 멀리 떠나서도 '80년 5월 '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김 씨.

    ▶ 인터뷰 : 김용균
    - "5ㆍ18을 목격한 증인이기 때문에 동료들과 직장 선배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다르더라고요. 서울에 와서 보니까. 당시 언론들이 이야기했던 그대로 믿고 있더라고요."

    그때의 진실을 밝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40년 동안 간직해왔던 빛바랜 일기장을 선뜻 내놓았습니다.

    ▶ 싱크 : -
    - "밤에 하늘을 보니 보름이 가까운 때라 달이 휘영청 밝다. 저 달을 어젯밤에도 보고 즐겨 했던 젊은이들이 오늘 새벽 계엄군이란 허울 좋은 이름을 가진 놈들이 쏜 총에 맞고 죽어 갔다. 역사는 나중에 말하리라. 누가 옳고 그른 것을."

    가슴에 묻어두었던 '부끄러운 기억'을 꺼내든 이유는 단 하나, 함께하지 못했다는 '살아있는 자'로서의 미안함 때문입니다.

    ▶ 인터뷰 : 김용균
    -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비겁해서 살아남았어요.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살아남아서 그분들에게는 참 미안하죠. 당연히."

    kbc 고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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