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80년 엄마의 일기..'청년들 밥은 먹여야겠더라고..'

    작성 : 2020-05-15 18:48:21

    【 앵커멘트 】
    80년 5월은 광주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아픔이자 충격이었는데요.

    버거운 일상을 사느라 행동으로는 동참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시민군과 함께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주화라는 거창한 단어는 몰라도 이웃의 아픔은 외면하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우리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 기자 】
    우체국 직원이었던 남편을 따라 광주로 이사 온 허경덕 씨.

    이사 한 달만에 5·18 을 맞았습니다.

    최루탄을 마시고 몸져 누운 남편과 어린 아이들, 그리고 하숙생 두 명까지.

    홀로 여덟 식구 챙기기 바빠 세상 일엔 관심두지 못했지만 시민군을 볼때면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 인터뷰 : 허경덕
    -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나와서 밥을 해줘. 그런데 나는 남편이 아팠을 때니까 밥을 못 해줬어. 그래서 미안해서 몇 사람만 집으로 불러서 밥을 해줬지. 근데 몸에서 쉰내가 나. 땀을 흘리고 안 갈아입으니까. 그래서 수건 몇 장 주고."

    세상이 왜 시끄러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던 평범한 주부는 답답한 마음을 글로 담았습니다.

    ▶ 인터뷰 : 허경덕
    - "왜 군인과 민간인이 싸우고 왜 이러지. 이 사람들은 어디서 온 거지? 누가 시켰지? 무슨 지시가 있었겠지?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 거지"

    일기 곳곳엔 다친 아들, 딸들이 어서 낫게 해달라는 기도가 가득합니다.

    이런 낙서까지도 누가 볼까 조심돼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는 허 씨.

    40년이 흘러 먼지 가득한 일기를 꺼내들었습니다.

    ▶ 싱크 : -
    - "집에 앉아 아파 죽으나 총에 맞아 죽으나 이판사판이었다. 이 양반 기운이 없어 걸음도 걷지 못한다. 갑자기 군인 두 사람이 총을 들이댄다. 우린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누구며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너무 무서웠다. 초등학교 때 6.25를 겪었지만 직접 서슬 퍼런 군인들은 보지 못했다."

    두려웠던 그때를 다시 기억해내는 이유는 단 하나. 오늘을 위해 스러져간 이들이 있었다는걸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인터뷰 : 허경덕
    - "아, 나도 남자라면 저 현장으로 뛰어가겠다. 아이들이 없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가 밥 한 번도 안 해먹이면 안 되겠다. 그래서 밥해 먹인 거죠."

    kbc 고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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