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단한 잿빛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입김, 잔뜩 웅크린 어깨.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 작가가 새벽 시간 구로공단에서 마주한 풍경입니다.
'지금', '여기'를 사는 개인의 작은 일상에서 한국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는 방정아 작가 개인전이 광주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4년 오지호미술상 수상작가전 <방정아:묻다, 묻다>입니다.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회화 43점을 모은 전시는 사회, 여성, 생태, 일상 네 갈래로 구성돼 그가 30여 년간 밀어붙여 온 '내 식의 리얼리즘'을 따라가게 합니다.
먼저 사회 섹션에서는 작가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주목합니다.

특히 신작 <묻다, 묻다>는 '방정아 리얼리즘'이 집약된 작업입니다.
해방기 이념 대립 속에서 살아가는 오지호 선생이 그 시절의 기억을 땅에 묻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예술가는 어떻게 시대와 마주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오지호 선생의 경험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보고, 방정아가 천착해 온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과 실존이라는 주제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두 번째, 여성 섹션은 예술가이자 보통의 여성으로 살아온 작가의 경험을 동시대 여성들의 보편적 서사로 확장합니다.
멍든 몸을 감추려 문 닫기 직전 목욕탕을 찾은 여성과 그 옆에서 욕조 청소에 열심인 세신사의 모습을 담은 <급한 목욕>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무감각이 드러납니다.
<튼 살>, <수월관음도> 등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숨 쉬고 있는 구체적 주체인 여성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세 번째, 생태 섹션에선 급속한 도시화와 무분별한 개발, 기후 위기로 파괴되는 자연 환경과 생명을 다룹니다.

주한미군의 생화학실험, 핵발전 등 환경 이슈뿐만 아니라 죽은 고양이를 추모하는 <흩어지고 있었어>와 우리에게 '고기'로 대표되는 소, 닭 돼지를 보살로 호명하는 <삼보살> 등.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해체하며 연결된 생태계의 본질을 시각화하기도 합니다.
특히 위트와 냉소, 위로가 어우러진 일상의 단편을 담은 일상 섹션은 방정아 서사 회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배낭에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꽂고 집회에 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헐, Oh my god>엔 작가의 유머와 냉소가 섞여 있습니다.
작업실 마당에 있는 국화 화단을 보며 그린 <아직 죽지 않았어>에 대해 방 작가는 "완전히 말라 틀어진 국화가 겨울을 나고 봄이 되니까 그 밑에서 싹이 나더라. 국화가 다년생인 걸 까먹고 있었다"며 "스스로에게도 위로의 말처럼 전하려고 제목을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2024년 오지호미술상 본상 수상자인 방 작가의 예술 세계를 조망하고, 오지호미술상이 지향하는 예술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오지호미술상 심사위원회는 방 작가가 형상미술의 문맥을 지키면서도 기후변화, 젠더 문제 등 동시대 핵심 이슈를 다루며 회화의 독자성을 제시해 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방정아:묻다, 묻다>는 2026년 1월 18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5, 6 전시관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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