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시민군' 정해직·김향득, 동지들 배웅 속 잇따라 영면

    작성 : 2025-10-11 15:20:41
    ▲5·18 시민군 민원부장을 지낸 故 정해직 씨와 '5·18 소년 시민군' 사진작가 故 김향득 씨 [연합뉴스]

    45년 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며 옛 전남도청 등을 사수했던 시민군들이 잇따라 영면에 들었습니다.

    11일 5·18 관련 단체에 따르면 지난 9일 오전 5·18 시민군 민원부장을 지낸 정해직 씨가 신군부로부터 받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별세했습니다. 향년 75세.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한 고인은 교사로 일하던 1980년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을 목도하고선 항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근무지인 보성 소재 초등학교로 출근하긴 했어도 잔혹한 잔상이 잊히지 않았고, 5월 19일 광주로 돌아가 시민군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1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시민군 출신 정해직 씨의 민주장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추모탑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군 민원부장을 맡은 고인은 5·18 민주광장에 있는 분수대를 무대로 5월 25·26일 두차례 열린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에서는 시민군의 대변인으로 알려진 윤상원 열사 등과 함께 궐기대회문 작성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최후 항쟁일인 5월 27일에는 시민군의 심장부인 옛 전남도청에 남아 끝까지 사수하다가 계엄군에게 붙잡혔고, 상무대로 끌려가 고문·구타를 당했습니다.

    갖은 고초 끝에 고인은 내란중요임무종사죄로 1심 징역 10년, 2심 5년을 선고받았고, 10개월간 옥살이하다가 풀려났습니다.

    그 사이 항쟁에 참여한 이유로 해직 처리됐고, 1983년 4월 복직이 아니라 특별채용으로 교단에 다시 섰다가 교육 민주화를 위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교육민주화선언 등에 참여해 재차 해직했습니다.

    고인의 영결식은 이날 아침 8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등 9개 단체 주관으로 엄수됐습니다.

    지난 7일에는 '5·18 소년 시민군'으로 알려진 김향득 사진작가가 향년 6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광주 대동고 3학년 생이던 1980년 5월 계엄군의 폭도에 무작정 항쟁에 참여했고, '소년 시민군'으로 나서 투사회보팀에 합류해 인쇄·배포를 담당해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습니다.

    5월 27일 새벽 YWCA에서 들이닥치는 계엄군에게 항전하다가 체포됐고, 상무대 영창에 38일간 구금돼 모진 고문을 견뎌냈습니다.

    ▲10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5·18 시민소년군 故 김향득 민주장 노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항쟁이 끝난 이후 광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해 오월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고인은 현장에서 5·18을 지켜본 옛 전남도청 앞 회화나무가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고사하자 후계목을 찾아 회화나무 소공원에 심는 행사를 여는 등 5·18 관련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민주장으로 치러진 고인의 장례 절차는 어제(10일) 오전 5·18 민주광장 인근 옛 전남도청에서 거행됐습니다.

    '소년, 먼 길을 떠나다'라는 명칭으로 고인의 지인들이 주관한 장례에는 1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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