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관리위원회 직원에게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 동네 후보가 '무투표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되는 후보자는 전체 당선인의 약 12%인 504명에 달할 전망입니다.
지역 주민을 위해 일할 대리인 10명 중 1명 이상이 유권자의 선택과 검증이라는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공직에 오르는 셈입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후보자 수가 선거구의 선출정수를 넘지 않으면 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당선자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투표소 운영과 개표에 드는 행정력과 비용을 아끼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효율성이라는 명목 뒤에 가려진 무투표 당선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심각한 폐해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첫째, 주권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투표권'이 원천적으로 박탈됩니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단순히 자리에 앉을 사람을 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대리인에게 합법적인 권한과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입니다.
단독 후보라 할지라도 유권자가 직접 찬반을 표시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단 1표의 찬성표도 받지 못한 채 당선증을 거머쥐는 구조는 대의제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둘째, 유권자의 알 권리를 전면 차단하는 '깜깜이 선거'가 강제됩니다.
무투표 당선이 확정된 후보자는 거리 유세나 공보물 발송 등 통상적인 선거운동의 필요와 제도적 공간 자체가 사라집니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책과 자질을 공식 선거과정을 통하여 파악할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한 채 4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후보자를 검증하고 정책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통로가 법적으로 막히는 것입니다.
셋째, 거대 정당을 향한 맹목적인 '지역 표 쏠림'과 기형적인 '선거구 쪼개기' 관행이 결합하여 무투표 당선을 대거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의 무투표 당선 예상자 504명 중 503명이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306명)과 국민의힘(197명) 소속인 데서 드러나듯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세가 압도적인 호남과 영남 등의 지역에서는 '당의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이 성립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주의 토양 위에서도 거대 정당이 100% 의석을 독식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강력한 온실은 바로 '2인 선거구'입니다.
공직선거법상 기초의회 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2명부터 4명까지 선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구 획정 권한을 쥔 광역의회의 거대 정당 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3~4인 선거구를 인위적으로 분할하여 '2인 선거구'로 쪼개는 꼼수를 부려왔습니다.
실제로 지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국 1,030개 선거구 중 2인 선거구는 절반이 넘는 51.3%에 달했던 반면, 소수 정당 진입의 실질적 통로인 4인 선거구는 3.6%, 5인 선거구는 단 0.4%에 불과했습니다.
이번 제9회 지방선거에서도 2인 선거구는 51.2%로 여전히 절반을 넘는 반면, 4인 이상 중대선거구 확대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역 패권 정당이 70%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2인 선거구에서 이 정당이 2명의 후보를 내보내면, 지지자들의 표가 나뉘더라도 각 후보는 35%씩 득표하여 손쉽게 1등과 2등을 독식합니다.
3등으로 진입해야 하는 소수 정당은 사실상 30% 안팎의 높은 진입장벽에 부딪혀 출마 자체를 포기하게 됩니다.
경쟁자가 사라진 선거구에는 거대 정당 후보 2명만 남아 '무투표 당선'이 확정되는 기형적 결과가 속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3~5인 선거구로 확대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비밀은 '1인 1표제'의 수학적 원리에 있습니다.
유권자는 4인 선거구라 할지라도 오직 '단 1명의 후보'에게만 투표할 수 있습니다.
만약 70%의 지지를 받는 패권 정당이 4인 선거구에 4명을 전부 공천한다면, 이 70%의 표는 4명에게 나누어져(평균 17.5%) 자당 후보들끼리 서로의 표를 갉아먹는 이른바 '팀킬(Team Kill)'이 발생하게 됩니다.
표가 여러 후보에게 분산되면서, 4등으로 턱걸이 당선되는 데 필요한 득표율은 10~15% 수준까지 낮아질 수 있습니다.
지역주의 표 쏠림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3~5인 선거구 체제에서는 탄탄한 정책과 15% 내외의 고정 지지층을 확보한 소수 정당과 제3지대 인물이 당선권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적 틈새가 열립니다.
표 분산을 우려한 거대 정당 스스로도 후보 공천을 2~3명으로 줄이게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다원화된 정치 세력의 진입으로 이어집니다.
무투표 당선의 근본적 해결과 지방자치의 회복을 위해서는 다음의 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우선 '2인 선거구의 전면 폐지와 최소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의 의무화'입니다.
광역의회가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쪼갤 수 없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일당 독식의 싹을 잘라야 합니다.
더불어, 단독 출마 지역이라도 유권자가 표심을 표현할 수 있도록 '무투표 당선자 찬반투표제(최소 득표제)'를 도입하고, 선거 공보물 발송을 의무화하여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는 비용이 따릅니다.
투표소를 운영하는 행정 비용보다, 투표할 권리를 빼앗기고 견제 없는 일당 독점 권력을 방치했을 때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훨씬 큽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권리가 행정 편의와 자의적 선거구 획정에 의해 증발하지 않도록, 시민들의 날카로운 감시와 지혜로운 행동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본 칼럼은 KBC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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