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0민주항쟁 39주년을 맞아 1987년 6월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이후 전개된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8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민주화추진협의회 특별강연회에서 황태연 동국대학교 명예교수는 1987년 6월항쟁을 서울을 비롯한 전국 38개 도시에서 총 450만 명이 궐기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고 민주헌정질서를 복원시킨 위대한 의거로 규정했습니다.
황 명예교수는 이 대전환으로 한국 정치가 불가역적 민주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6월항쟁이 자연발생적인 사건이 아니라 민주화추진협의회가 주도한 계획적 의거였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민추협이 1987년 5월 27일 정계와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학생운동권 등 분산되어 있던 민주화세력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로 단일화하고, 이 국본을 통해 항쟁을 체계적으로 이끌었다는 설명입니다.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전두환 정권의 4·13호헌조치로 한반도 정세는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황 명예교수는 당시 전두환 세력이 군대 투입을 거의 결정했던 위기일발의 순간을 언급하며, 전두환이 "이것은 계엄령이 아니라 계엄령에 정당해산 등 플러스알파를 하는 비상조치"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자칫 서울 한복판에서 참혹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으나, 국민들의 거센 저항과 국내외 압박에 결국 정권이 굴복하며 6·29선언으로 직선제를 수용하게 되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황 명예교수는 6월항쟁을 1919년 3·1평화혁명의 연장선에 있는 '맨손항쟁'이자 '도수혁명(徒手革命)'으로 바라봤습니다.
우리 국민이 맨주먹의 비무장 육탄으로 4·19혁명과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촛불혁명 등을 이어오며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위대한 시계열 속에 6월항쟁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강연에서는 항쟁 이후 촉발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양김(兩金) 10년 연속집권'에 대한 전향적인 평가도 나왔습니다.
비록 두 지도자가 1987년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비판을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이어진 10년의 집권기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도약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조명입니다.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 청산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단죄를 통해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반을 닦았고, 세계화 노선과 신경제 정책으로 경제 체질 개선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황 명예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바다의 날 기념사에서 "1996년 김영삼 정부의 해양수산부 출범은 대한민국을 해양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 가득한 결단이었습니다"라고 높이 평가한 대목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외환위기라는 아픔을 겪었으나,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존의 공고한 관치금융과 재벌체제의 폐단이 허물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정권교체 이후 단 3년 반 만에 IMF 구제금융 체제를 조기 졸업했으며, 한국을 세계적인 IT·지식기반 강국으로 변모시켰습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선진적 복지 기틀을 마련했고, K-컬처의 기반이 된 문화산업정책을 펼쳤습니다.
특히 2001년 시작된 KF-X 사업은 오늘날 방산강국의 상징인 'KF-21 보라매'라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황 명예교수는 "YS와 DJ의 10년 연속집권이 없었다면 개혁의 맥이 끊겨 이러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두 지도자가 목숨을 걸고 만들어낸 6월항쟁과 10년의 연속집권기야말로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가장 본질적인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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