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 KBC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광주·전남 시도민 여러분, 새해에는 여러분들이 꿈꾸는 모든 일들이 꼭 소원 성취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올해는 80년 광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선도했듯이, 지켜냈듯이. 또 광주·전남이 새로운 지방 주도 대전환, 대한민국의 새로운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으로서 시도의 문제 함께 고민하면서 헤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유재광 앵커: 지방 주도 대전환 말씀하셨는데, 광주·전남 통합 얘기는 조금 뒤에 하고. 80년 광주 말씀하셨는데, 옛날얘기 좀 하나 해봐도 될까요?
85년 전두환 정권 당시 5·18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며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했잖아요. 그때 서울대, 연대, 고대, 성대, 서강대 이렇게 들어갔는데. 3년간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셨는데. 무슨 생각으로 '미문화원을 점거해야지' 그런 생각을 그때 하신 건가요?
△신정훈 의원: 3년은 조금 못 살고요. 2년 반 정도 징역 생활을 했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군사정권이 총칼로 국민을 학살하고 정부를 참칭했잖아요. 우리 젊은 청년들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죠.
더더군다나 이제 학살의 현장이나 군부의 배후에서 뒷배 노릇을 하고있는 미국에 어떤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제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고 싶었다. 이런 것들이 함께, 거칠게, 제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재광 앵커: 그런데 '미국 문화원을 점거해야지' 그런 생각은 말씀하신 취지에서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점거를 딱 하고 나시니까. 이게 되네? 이런 생각은 혹시 안 드셨나요?
△신정훈 의원: 온통 두려움이었죠. 사실은 미국 문화원을 선택해 점거했는데. 85년도 그때 상황은 지금 하고 전혀 다릅니다.
한마디도 할 수도, 외칠 그런 자유도 없었던 시대에 미국 문화원이라는 그 공간을 통해서 세계를 향해서 광주학살의 진상을 전하고. 또 신군부 전두환 내란정권 쿠데타정부를 탄핵하기 위한 그런 공간으로서 저희들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들어갔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유재광 앵커: 그런데 사흘간 점거 농성하고 경찰에 연행됐을 때 그때 한국일보 호외판, 지금은 뭐 호외판이라고 그러면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호외판에 연행되는 경찰버스 안에서 창문 열고 고개 이렇게 내밀고 팔뚝을 이렇게 치켜들면서, 근데 뭐라고 외치셨어요? 그때.
△신정훈 의원: 윤석열 내란 세력들은 한두 달 전에 자기들이 한 행위에 대해서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만. 저는 그때 너무 절박했기 때문에 40년 전 일인데도 너무 생생해요.
서울 미국문화원이 현재 서울 롯데호텔의 건너편이거든요. 그런데 연행되는 버스 안에서 보니까 롯데호텔 쪽에서 카메라가 이렇게 수십 개가 이렇게 저희들을 촬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기어코 외치고 싶었죠.
미문화원을 점거할 당시에는 창문을 깰 수가 없어서 우리가 외쳐도 바깥으로 들리지가 않아요. 밖에서. 그런데 연행되면서 이제 처음으로 우리에게 기회가 왔는데. 그래서 문을 열고, 차 창문을 열고 힘껏 외쳤죠. 죽어라고 외쳤죠.
▲유재광 앵커: 뭐라고 외치셨어요? 그때.
△신정훈 의원: 광주 학살의 주범 전두환 노태우는 퇴진하라. 그리고 학살자를 지원하는 미국은 공개 사과하라. 이렇게. 하여튼 있는 힘껏 외쳤던 것 같습니다.
▲유재광 앵커: 40년도 더 지났는데 지금도 어제처럼 그냥 기억이 나시는 것 같네요?
△신정훈 의원: 그럼요. 그때 상황은 잊을 수가 없는 거죠.
▲유재광 앵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약간 뭔가 웃음이 나왔던 게, 웃으면 안 되는데. 미국 문화원 점거하고 이제 잡혀가는 그 와중에 머리가 상당히 지금보다 더 곱슬머리인데, 미 문화원 점거와 곱슬머리. 약간 뭐랄까, 사진을 보면서 저 혼자 한참 웃었는데. 원래 그렇게 겁이 없으신가요?
△신정훈 의원: 아이고.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이 엄청 많았죠. 덜덜 떨면서.
사실은 제가 연행되면 이번에 아마 물고문 전기고문까지 가겠지? 그리고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또 징역은 3년이 아니라 한 10년 정도 살 거다. 이런 각오로 뛰어들어갔죠.
▲유재광 앵커: 왜 들어가셨어요? 그런 거 생각하면서 근데.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나요?
△신정훈 의원: 저도 광주를 겪기 전까지는 굉장히 착한 학생이었고 아주 순진한 학생이었죠. 그런데 광주의 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광주에서 겪었던 세대로서 그리고 그 이후에 전두환 쿠데타 정부가 국민을 통치하는 이 억압을 보면서 이것을 깨지 않고는 다른 세상을 지향할 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절박함. 그래서 용기를 낸 거죠. 두려움이 없었던 게 아니라요.
▲유재광 앵커: 그런데 저는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하는 선배들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위원장님 같은 경우는 재판받으러 들어가서 재판장 들어와서 법정경위가 '일동 기립' 하는데 그냥 다리 꼬고 앉아서 "당신들은 우리를 재판할 자격이 없다." 이래서 또 독방에, 징벌방에 갇히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데 부모님 생각하면은, '모난돌이 정 맞는다. 중간만 해라.' 어른들은 그렇게 말씀을 하시잖아요. 그런데 부모님 생각은 안 나셨나요?
△신정훈 의원: 저희 부모님은 농촌에 사시는, 정말 열심히 땀 흘려서 아들을 서울로 보냈으니 얼마나 기대가 컸겠습니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부모님이죠. 그랬는데.
그때 당시에 재판은, 군사정권 하에 이 재판은 사실상 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정권을 정당화하는 재판을 진행하는데 저희들이 순순히 그 재판 절차를 용납할 수도 없었고요.
또 재판정 자체가 세계의 언론이 다들 집중해 있기 때문에 그 재판정을 통해서 군사독재 정권의 만행을 알리고 싶었고요. 그래서 제가 외치고 또 저항했는데.
그때 제가 감치 15일 그러니까 윤석열 그 변호인들이 먹었던 감치 15일인데요.
▲유재광 앵커: 왠지 다르게 들리는데요?
△신정훈 의원: 예. 40년 전에 감치는. 윤석열 변호인들이 그 감치, 그 0.4평의 먹방에 보내졌다면.
▲유재광 앵커: '먹방'이라고 하나요
△신정훈 의원: 네. 아무 빛도 안 들어오고 공기도 거의 차단된 그런 먹방에서, 0.4평에서 15일을 견뎌야 되니까요. 그때는 뭐 포승줄로 묶어 놓고 수갑 채워놓고 15일을 견뎌야 되니까.
지금 그 윤석열 변호하는 이하상 변호인이 자기 권리 주장하는 그런 시대하고 전혀 다른 거죠. 만약에 윤석열 쿠데타가, 내란이 성공했다면 아마 참 참담한 현실이 됐을 겁니다.
▲유재광 앵커: 5·18과 전두환, 그런 시절을 겪고 살아오셨는데. 이번 윤석열 비상계엄 보면서 소회가 진짜 좀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신정훈 의원: 정말 믿기지 않는 거죠. 그리고 국민들이 그 세상을 전체 국민들이 다 함께 보고 겪었는데. 설마 경찰이, 설마 특전사라도, 공수 부대라도 그 역사의 기억을 다 가지고 있을 텐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래서 별도로 훈련시키고 별도로 조직한 어떤 그런 부대가 있지 않다면 계엄 성공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처음에는 두려웠고. 두 번째로는 국민들이 속지 않을 거다, 막아 주실 거다, 그런 희망이 있었고. 함께했고. 많은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달려와 주었기 때문에 막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윤석열에게는 역사적 심판을, 잘못된 과거와 단절을 할 수 있도록, 법정 최고형을 내려줄 것을 기대합니다.
▲유재광 앵커: 근데 이번 계엄에 동원된 707 특임대대, '특전사 중에 특전사'라고 하는데. 여기가 전두환이 12·12 때 공수부대 동원해서 국방부 육본 점거하고 그럴 때 공수부대를 보냈는데.
당시 정작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밑에 전두환 하나회 소속 공수부대 여단장들이 말을 안 들으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이제 전두환이 집권하고 특전사령관 직속의 무력부대로 707을 만든 건데. 자기들은 같은 꼴 안 당하려고 이렇게 만든 건데.
이번에 보니까는 그 사람들이 국회에 와서 진짜 소극적으로. 어떻게 보면 쿠데타를 안 한 거잖아요. 그래서 그 정도 수준은 우리나라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좀 없지 않아 하긴 했습니다.
△신정훈 의원: 아직도 꿈에서 못 깨고 있는 윤석열은 마치 그것이 자신이 그 내란을, 평화적인 내란을 실행한 것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힘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국민의 저력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유재광 앵커: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 농어업비서관 지내셨는데. 지금 윤석열 씨가 용산으로 옮긴 대통령 집무실, 다시 청와대로 돌아갔는데. 소회가 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신정훈 의원: 왜 용산으로 갔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고요. 국방부 청사를 빌어서 내란을 획책했던 지휘부가 이제 완전히 소탕되고 다시 그야말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이 있는 청와대.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품격과 정통성을 되찾고 내란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으로서 다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유재광 앵커: 오늘 영빈관에서 이재명 대통령께서 광주·전남 국회의원들 초대해서 오찬을 같이 했는데. 맛있으셨나요?
△신정훈 의원: 오늘 아주 진지한 대화가 오갔고요. 대통령의 진정 어린 국가 경영에 대한 이야기 있으셨고. 또 광주·전남 시도지사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지역에서 바라보는 이 시도 통합과 지방자치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눴죠.
▲유재광 앵커: 광주·전남 통합 이거 관련해서 지난 화요일 광주광역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셨는데. 일단 찬성은 당연히 하시는 거죠?
△신정훈 의원: 네. 원칙적으로 찬성일 뿐만 아니라 저 신정훈은 사실은 정치를 시작하면서 시도 통합에 대한 염원이 있었습니다. 제가 전남도의원일 때 95년도에서 98년도까지 제가 도의원이었는데. 그때 제가 시도통합추진위원회 사무총장이었어요. 그리고 목포로의 도청 이전을 아주 강력하니 반대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광주·전남이라고 하는 게 원래 한뿌리일 뿐만 아니라 이것을 전두환 군사정권이 86년도에 그야말로 사탕발림으로 광주광역시를 승격시키면서 사실 시도가 분리된 거거든요.
그런데 시도 분리도 마찬가지지만 이 광역시 승격도 굉장히 기만적이었어요. 생활권과 경제권이 하나인 광주·전남을 두 개로 쪼개 놓으면서 소위 말해서 통합력이 약화되고 또 대외적인 교섭력이 약화되고. 시도민들은 이 2개 자치단체를 넘나들어야 되는 불편함을 계속 감내했던 거죠.
그리고 거기에다가 도청 이전까지 가다 보니까 동서 간의 갈등과 분열이 극심해지고. 그래서 저는 이 광주·전남 시도 분리가 오늘과 같은 참담한 지방 소멸에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유재광 앵커: 광역시 승격이라는 허울을 씌워서 고립을 시켰다는 말씀인 거네요? 그러니까.
△신정훈 의원: 네. 힘을 약화시켰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물론 의도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과정이나 결과는 철저히 광역시 승격이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불행의 시작이었다. 저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신정훈 의원 인터뷰 전문은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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