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중항쟁 33주년을 맞아 저희
KBC는 당시의 충격으로 영구적인 정신
장애 즉 트라우마를 겪는 희생자들을
되돌아보고 치유대책을 찾는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80년에 갇힌 사람들, 5.18 트라우마를
말한다 첫 번째 시간 오늘은
결코 기억하기 싫은 그날의 기억들이
악몽처럼 떠올라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만나봅니다
그들 대부분은 30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감춰놨던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현재형으로 털어놨습니다 정경원 기자의 보돕니다.
80년 당시 28살 청년이었던 김태수 씨.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는 무자비하게 진압
당해 쓰러진 시민들을 병원으로 옮기는데
참여하다 5.18에 연루됐습니다.
5월 20일 밤, 후송 버스에서 깜빡 잠이 든 김 씨를 깨운 것은 끔찍한 총성, 이미 그의 오른쪽 다리에는 총탄이 박혀 있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광주교도소로 끌려간 뒤에는 간첩 누명까지 씌워져 엄청난 구타에 시달렸습니다.
교도소에서 겪었던 군홧발 세례와 풀려난 이후에도 수 년간 자신의 뒤를 따라다니던 경찰에 대한 기억 탓에 지금도 김 씨의 삶은 80년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터뷰-김태수/ 5*18 피해자
하루에 먹는 약만 30여 알, 불쑥불쑥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채 30분도 가만히 있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큰 딸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 같아 딸에 대한 죄책감이 김 씨를 마음을 누릅니다.
인터뷰-김태수/ 5*18 피해자
구속수감됐던 김춘국 씨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을 말리려다 5.18에 참여하게된 친형이 출감한 뒤 얼마되지 않아 운명을 달리 하면서 형과 그 가족에 대한 김 씨의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김춘국/ 5*18 피해자
CG
지난해 8월 기준으로 5.18 관련자는 모두 4천여 명.
이 가운데 4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특히 상이자들의 경우 자살 비율이 일반인의 500배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주변의 왜곡된 시선까지 더해져 이들의 정신적인 후유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때의 기억을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조희현/ 광주트라우마센터 치유팀장
지난 세월 동안 가족들에게조차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던 끔찍한 기억.
80년 5.18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삶은 여전히 80년의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KBC 정경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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