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 100년 넘게 쓸쓸히 있었던 한국 건축물 관월당(觀月堂)이 돌아왔습니다.
2010년 한 차례 논의가 무산됐으나, 수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고국 품으로 돌아오게 돼 주목됩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일본 가마쿠라(鎌倉)의 사찰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과 약정을 체결해 관월당 부재를 정식으로 양도받았다고 24일 밝혔습니다.
관월당 건물이 있었던 일본 소장자로부터 소유권을 양도받은 셈입니다.
일제강점기 1920년대에 일본인에게 건물이 넘어간 지 약 100년 만의 '귀환'입니다.
고토쿠인 측은 관월당 건물을 보존·복원하기 위해 지난해 건물을 해체했으며 국가유산청과 협의해 기와, 석재, 목재 등 각 부재를 순차적으로 한국으로 이송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오랜 기간에 걸친 협의와 한일 양국의 협력을 통해 이뤄낸 뜻깊은 성과"라며 "소장자의 진정성 있는 기증과 양국 전문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습니다.

해외에 있는 한국 건물 전체가 돌아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서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 내 정원 산책로에서 찾은 경복궁 자선당(資善堂)의 유구 110t 분량이 1995년 국내로 반환된 바 있으나, 대부분은 기단과 주춧돌 등 석재였습니다.
관월당은 조선 왕실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입니다.
건물은 정면 3칸 규모에 맞배지붕 형태이며, 높이가 11.3m(받침 제외)에 달하는 일본의 국보 '가마쿠라 대불'(鎌倉大佛) 뒤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월당은 1920년대 일본인에게 넘어가 '비운의 운명'을 겪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고토쿠인 측은 누리집을 통해 "1924년 (일본의 기업가인) 스기노 기세이(杉野喜精·1870∼1939)가 도쿄 메구로(目黑) 자택에 있던 것을 옮겨 사찰에 기증했다"고 설명해왔습니다.
학계 안팎에서는 조선 왕실이 돈을 빌리면서 관월당 건물이 담보로 잡혔고, 이후 조선식산은행이 재정난으로 융자받을 때 스기노 기세이에 증여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스기노 기세이는 훗날 야마이치(山一) 증권이 되는 야마이치 합자회사의 초대 사장을 지낸 인물로, 근대기 일본 경제를 이끈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일각에서는 관월당이 궁궐, 즉 경복궁에 있었던 건물이란 견해도 있으나 정확한 위치나 건물 용도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진 바 없습니다.
근대건축 전문가인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는 1997년 펴낸 저서 '일본을 걷는다'(한양출판)에서 "'(궁궐 내에 있던) 내불당(內佛堂)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연구·조사에 따르면 관월당은 스기노 기세이에게 넘어갔다가 이후 1930년대에 고토쿠인에 기증하면서 불상을 봉안하는 건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간의 조사·연구 성과를 종합하면 관월당은 18∼19세기에 조선 왕실과 관련한 사당 건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습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건축학적으로 보면 대군(大君)급 왕실 사당 규모에 해당한다. 또, 다채로운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어 높은 위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관월당은 한 차례 '실패'를 겪고 고국 품으로 돌아오게 돼 의미가 큽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2010년 일한불교교류협회 측과 관월당 건물을 한국으로 귀환시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협의가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019년 고토쿠인 측과 건물 보존을 위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논의 물꼬를 다시 텄고, 약 6년 만에 모든 부재를 양도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기증 의사를 밝힌 사토 다카오(佐藤孝雄) 고토쿠인 주지는 일본 현지에서 건물을 해체하고 부재를 옮기는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면서 협조했습니다.
고토쿠인 측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간 문화유산을 지속해 연구하자는 뜻을 밝히며 별도 기금을 마련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입장도 전했습니다.
사토 다카오 주지는 "지난 100년간 고토쿠인에서 있었던 역사적 의미와 가치도 기억하면서 한국 내 적절한 장소에서 본래의 가치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최응천 청장은 "문화유산을 매개로 상호 존중과 공감의 가치를 실현한 모범적 사례"라며 "한일 양국의 문화적 연대와 미래지향적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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