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생존 법칙

세종기지의 하루는 규칙적으로 돌아갑니다.
오 반장은 "매일 아침 8시 30분 전체 회의를 한 번 하고, 9시부터 각자 업무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독특한 규칙은 '식사'입니다.
한국에서는 먹기 싫으면 건너뛸 수 있지만, 남극에선 휴일에도 식사자리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개인 근무공간에 혼자 있다 사고가 났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오 반장은 "밥 먹기 싫어도 얼굴 보고 안부를 확인하는 게 룰"이라고 했습니다.
정해진 리듬이 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남극에선 '평소대로'가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대기과학연구원인 오 씨의 일은 관측 장비를 돌리는 일로 시작합니다. 세종기지에는 에어로졸, 대기 중 기체 등을 관측하는 장비가 약 15종 설치돼 있고, 매일 데이터·운영 상태 점검, 소모품 교체, 고장 대응, 자료 백업과 연구소 전달까지 맡습니다.
남극의 연구는 논문보다 먼저 "장비를 멈추지 않게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얘기입니다.
"남극에서 흙먼지가.."…기후변화는 '현장감'이었다

오 반장이 10년 만에 다시 남극을 찾으며 가장 강하게 느낀 건 '기후변화'였습니다.
10년 전에는 여름이어도 기지 주변에 눈이 많고, 녹은 물 때문에 질퍽한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흙먼지가 날리고 물기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겨울도 달랐습니다. 예전엔 3~4월이면 거의 매일 눈이 내려 제설 작업이 이어졌지만, 이번엔 5월까지 눈이 거의 오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눈 온 날과 양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배 뒤집히는 줄"…세종기지의 위험한 일상

세종기지는 해상 활동이 특히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바다 날씨가 안 좋아도, 하늘이 좋아 비행기가 떠야 하거나 중요한 보급품·인원이 이동해야 하면 고무보트를 운행할 수밖에 있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엔 "이러다가 배 뒤집히는 거 아니냐"는 걱정이 들 정도로 물살이 거칠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부상도 실제로 있었습니다. 하계 연구원 중 발목 골절이 있었고, 오 반장은 빙하 지형 탐사 중 발밑이 꺼지며 순간적으로 손을 짚는 과정에서 어깨가 탈골됐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보급선 하역이 시작되는 상황이라 "걱정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반대 방향으로 "0.5초 만에" 어깨를 맞췄다고 말했습니다. 보급 일정이 끝난 뒤에야 대장 등에게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햇빛 없는 계절…'멘탈 관리'는 필수남극의 겨울은 우울감을 부릅니다.
남반구인 세종기지는 6월 21일이 동지입니다.

해가 뜨긴 떠도 몇 시간뿐이고, 무엇보다 "해가 떠도 흐린 날씨가 많아 파란 하늘과 햇빛을 한 달에 며칠 못 본다"고 했습니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해소법은 '운동'이었다고 합니다. 실내 체육관에서 풋살·농구를 하고, 가끔 바깥에서 눈썰매도 타며 땀을 내면 스트레스가 풀렸다고 말했습니다.
"오징어 게임 다 알더라"…남극의 뜻밖의 K-교류

기지 간 교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여름철엔 초청이 활발해 다른 나라 기지에 가면 전통 음식, 운동, 선물 교환 등이 이어집니다.
이때 한국은 확실히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오 반장은 "만나는 나라 대원들이 한국 드라마·영화 이야기를 다 한다. 오징어 게임도 알고, K-뷰티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습니다. "매운 라면"을 챙겨가 함께 먹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도 했습니다.

시설 비교에선 세종기지의 변화가 뚜렷했습니다.
연구동을 새로 지으며 규모와 내부 상태가 좋아졌고, 다른 나라 기지 대원들도 "엄지척"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반대로 일부 남미 기지에선 문고리·시설 고장이 방치된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는 그래도 시설에 투자를 하는 나라구나"라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마음 같아선 다 때려치우고"…남극에서 들은 비보

오 반장이 남극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순간은 '추위'도, '고립'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전해진 어머니의 비보였습니다. 그는 "마음 같아선 다 때려치우고 빨리 한국에 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남극은 마음먹는다고 바로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비행 일정도, 이동 조건도, 기상도 '가능할 때만' 허락되는 공간이었습니다.
기지 안에서는 동료들이 오 반장을 위해 조용히 분향소를 차렸습니다. 고마운 마음은 컸지만, 오 반장은 그 앞에 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 가면 너무 힘들 것 같았다"는 말처럼, 그는 한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방에 머물렀습니다.
남극의 하루는 장엄한 풍경보다, 이렇게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시간'으로 더 선명해졌습니다.
귀국 후 아들과의 '첫 만남'귀국 직후 오 씨가 가장 먼저 한 건 아들과의 연락이었습니다.
그는 아들을 몰래 만나 깜짝 재회를 준비했지만, 생각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평소엔 영상통화를 하던 아들이 그날따라 영상으로 받으려 하자, 들키지 않으려 급히 통화를 끊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색해졌습니다.
다음날 학교 앞에서 조심스럽게 마주한 아들은 "아빠, 한국 온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들키지 않으려' 했던 마음이 오히려 아들에게는 확신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오 씨는 남극에 있는 동안 아들에게 "보고 싶냐"는 말을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더 무너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대신 돌아와 밥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물었고, 아들은 "아빠가 먼저 하면 나도 하려고 했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오 씨가 생각한 것보다 아들은 훨씬 더 성숙해 있었습니다.

오 씨는 "남극은 정말 아름답고 장엄하지만, 잠깐 다녀오는 관광과 1년을 사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특히 "누군가 사랑하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1년을 남극에 머무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1년의 월동은, 결국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에 더 단단히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영식 연구반장의 남극 월동기는 유튜브 <오씨튜브>와 <남극에서 쓴 아빠의 일기> 도서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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