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제가 죽어버리면 남편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미당(未堂) 서정주의 시 '푸르는 날'입니다. 면면부절(綿綿不絶). 끊어질 듯 우렁차게 이어지는 가수 송창식 씨의 동명 노래로 더 유명한 시입니다.
서정주. 일제 제국주의 침략전쟁 말기의 친일 행각과 12.12쿠데타, 5·18 학살 전두환 찬양과는 별개로. 그의 시는 '한국어가 조탁하고 길어 올릴 수 있는 정수의 절정'이라는 찬사가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시인'입니다.
푸르는 날 시의 후반부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뜬금없이 서정주의 '푸르른 날'로 '여의대로 108'을 연 건 김건희 씨의 어떤 발언이 저 시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죽어버리면 남편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김건희 씨가 구치소로 접견을 온 신평 변호사에게 했다는 말입니다.
◇"서희건설 이봉관, 정권과 짜고 우리를 죽이려 해"...억울, 분노, 적개심 '풀풀'제가 죽어버리면 남편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내가 죽으면 내 남편이 살 수 있을까.
김건희 씨가 푸르른 날 시를 평소 좋아하는진 모르겠으나, 김건희 씨의 저 말에서 저는 서정주의 푸르른 날 시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비장하기로 따지면 김건희 씨의 것이 훨씬 더 비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신평 변호사를 접견한 김건희 씨는 저 말 말고도 여러 말을 더 했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입니다.

먼저, 윤석열 당시 대통령 나토 정상회의 순방 동행 때 착용했던, 몇 번 들었지만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운, 6천만 원 넘는다는 목걸이와 다른 장신구를 준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에 대해선 "정권과 짜고 우리를 죽이려 한다"는 적개심을 드러냈습니다.
김건희 씨는 해당 목걸이는 엄마에게 선물하려고 산 짝퉁이라고 주장했고, 법원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도 이봉관 회장에게 목걸이를 받은 적이 없다고 강변했습니다.
그러나 특검은 12.3 계엄 사태가 난 뒤 김건희 씨가 이봉관 회장에게 돌려준 목걸이 진품을 확보해 '김건희 씨 준 것'이라는 이봉관 회장의 진술을 법정에서 제시했고, 재판장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김건희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김건희 씨 입장에선, 본인의 거짓말과 조악하고 추잡하기까지 한 짝퉁 자작극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그로 인해 구속됐으니, 적개심을 가질 만도 합니다.
◇"한동훈, 어떻게 그럴 수가...배신만 안 했으면 무한한 영광 있었을 것"...'독기'

거의 '형수님, 도련님' 하던 사이였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해선 "한동훈이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며 "한동훈이 그렇게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앞길에는 무한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역시 분노와 한탄을 동시에 드러냈습니다.
'배신자' 프레임을 씌워 우파 정치권에서 한동훈 전 대표를 매장하려는 독기나 저주 비슷한 것도 저는 개인적으론 느껴집니다.
이에 대해 김건희 씨 측은 "'무한한 영광'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신평 변호사가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려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취지로 반발했는데, 신평 변호사를 개인적으로 좀 아는데, 이른바 초는 좀 쳤어도 아예 듣지도 않은 말을 했을 것 같진 않고, 신 변호사도 언론 인터뷰에서 "한동훈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자기가 실권을 차지하기 위한 '쿠데타'를 기획했고, 작금의 모든 사태가 여기서 연유했다고 김 여사가 생각하는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신평 변호사는 그러면서 또, "'오죽했으면 우리 남편이 계엄을 했겠습니까'라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YTN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말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우리 남편이 계엄을 했겠습니까"...죽도록 잡고 싶었던 건 한동훈?!

저를 포함해서 사람들이, 그냥 보통의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이번 12.3 비상계엄 친위 쿠데타 내란을 보면서 가장,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니 이재명 공직선거법 재판 대법원 전원합의체 유죄 파기환송이 나왔는데, 조금만 있으면 피선거권 박탈되고 감옥 가는데. 도대체 왜 이 말도 안 되는 계엄을 해서 본인은 평생 감방에서 썩고 아내 신세도 망치고. 이재명 대통령 만들고. 왜 저랬지?' 하는 불가사의.
도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었는데, 신평 변호사가 전한 김건희 씨의 말을 들으면 그 의문의 단초가 풀리는 듯합니다.
진짜 간절하게 잡고 싶었던 건. '수거'해서 '처리'하고 싶었던 건. 정작 '이재명' 보다는 '한동훈'이었구나, '법적으로' 아무 하자 없이 깨끗해서 법적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한동훈을 비상계엄을 해서 처리하고 싶었구나. 그런 것이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거는, 계엄의 진짜 내막과 이유는 특검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밝혀지길 바라고. 김건희 씨가 했다는 말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신평 변호사에게 이재명 대통령의 장점을 물으면서 신 변호사가 "사람을 키울 줄 안다"고 답하자, "그 말을 남편에게 전해달라"며 "남편을 만나면 꼭 끝까지 버텨 달라고 전해달라"고 몇 차례나 당부했다는 말입니다.
◇"끝까지 버티라고 남편에게 꼭 전해달라"...꼭 살아온다, 아직도 권토중래 꿈꾸나저 말이 맞다면, 저건 한동훈 같은 '배신자'가 아니라, '진짜 윤석열의 사람'을 키워서, 내란 우두머리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재명 대통령이 조국을 사면 복권 시켜줬듯, 그렇게 풀려나 기어이 권토중래하겠다는 것. 이렇게밖엔 읽히지 않습니다.

실제,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결선에 오른 장동혁 의원 같은 경우는 당대표가 되면 '윤석열 대통령'을 면회가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수위와 강도는 달라도 김문수 후보도 '윤석열 탄핵 반대', 반탄 입장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강하게 견지해 왔습니다.
반탄의 논리적 귀결은 윤석열 씨의 사면과 복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남편이 살 수 있을까. 액면 그대로의 말이라면. 남편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본인이 기꺼이 죽음이든 뭐든 등신불이 되겠다는 모골 송연함도 느껴집니다.
근데 덩달아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힘 대표는 장동혁, 김문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탄핵의 강'에 스스로 투신...'尹 어게인' 국민의힘, 다시 정권 잡을 수 있을까근데. 장동혁 의원이나 김문수 전 장관이, '반탄'이, 탄핵의 강을 건너긴커녕 탄핵의 강에 온몸을 투신한, '윤 어게인'을 공공연하게 외치는 당이, 상식적인 국민 보편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정권이라는 걸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정치 9단'이라 불리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제가 진행하는 대담 프로그램 '여의도초대석'에서 여러 차례 "국힘은 쪼개질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저도 개인적으론 찬탄과 반탄으로 갈라진 국민의힘이 분당 비슷한 길로 가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정리하겠습니다.
◇김건희, 난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아내 역할에만 충실' 약속 지켰다면..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내가 다시 내 남편하고 살 수 있을까, 다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제가 죽어버리면 남편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남편을 만나면 꼭 끝까지 버텨 달라고 전해달라.
김건희 씨의 구속을 전후한 말과 의식의 흐름을 보면 두 가지가 보입니다.
먼저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
김건희 씨는 정말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악착같이 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검찰총장 부인, 대통령 부인, V-0, 권력의 최정점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누렸습니다.
오는 목걸이 안 막고, 오는 시계, 브로치, 가방 안 막고. 고속도로? 그까이거 마음대로 휘어지게 했습니다.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살아서 이루고 올라온 성취를 소소하게 좀 누렸는데. '나한테 왜 이러지?' 뭐 이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죽으면 남편이 살까, 본인들이 '죽을 상황'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기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자꾸 뭔가를 도모하고 싶은 것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남편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다면. 그냥 애초에 목걸이 같은 거 안 받고, 공천 같은 거 끼어들지 말고, 고속도로 노선 같은 거 그냥 놔두세요 했으면 되는 일 아닌가 합니다.
그냥 애초에 약속한 대로 '아내 역할'만 충실히 했다면. '내가 내 남편과 다시 같이 살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죽어버리면 내 남편이 살길이 열릴까' 이런 말을 한 건덕지도 아예 없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후회(後悔). 뒤에서야 뉘우친다. 그래서 모든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아닌가 합니다.
◇내자물금(來者勿禁) 왕자물지(往者勿止)...이제 다 놓아 버리고 번뇌에서 벗어나길'내자물금(來者勿禁) 왕자물지(往者勿止)'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가의 경전인 '장자' <외편> '삼목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직역하면 내자(來者), 오는 것 금하지 말고. 왕자(往者), 가는 것 멈추려 하지 마라. 쉽게 말하면 '오는 것 막지 말고 가는 것 잡지 마라' 정도 뜻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봐야 올 건 오고 갈 건 가니 부질없이 안 되는 걸 억지로 잡아보려 하지 말고 집착과 미몽에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내가 다시 내 남편과 같이 살 수 있을까. 끝까지 버티라고 남편에게 전해 달라.
김건희 씨가 구치소에서 뭘 도모하는진 어렴풋이 알겠는데. 내자물금 왕자물지. 이 여덟 자를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부질없는 집착은 버리고, 자꾸 뭘 더 잡으려 하지 말고, 이제 그만 다 놓아 버리고, 오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어떤가 싶습니다.
신평 변호사가 "수의 밑에 드러난 팔목하고 손을 보니 뼈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하던데.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뭘 해야 하지, 내가 죽어버리면 남편은 살까. 번뇌는 몸과 마음을 다 태운다고 합니다.
설령 그렇게 해서 남편이 다시 살아나 아크로비스타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내 남편'이 그 좋아하는 술 마시는 것 말고 뭘 더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이제 그만 다 놓아 버리고. 일장춘몽(一場春夢). 한바탕 긴 봄 꿈을 꾸었다 생각하고. 왕자물지往者勿止). 맞을 건 맞고 보낼 건 보내고. 펄펄 끓는 번뇌에서 벗어나길 다시 한번 진심 바랍니다.
지금까지 '유재광의 여의대로 108'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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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너희 둘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 사기꾼이라고 한다. 느그들 몸뚱아리는 실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