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를 입고 조선을 달리다" 숨겨진 민족 영웅, 마라토너 남기룡 탄생 110주년

    작성 : 2025-07-23 19:03:01 수정 : 2025-07-23 20:06:46
    올림픽 대표팀의 유일한 조선인 마라토너, 남기룡 탄생 110주년
    양정고 유니폼 'Y'로 조선인의 자존을 드러낸 청년의 이야기
    日 야쿠자의 칼에 찔려도 운동장을 포기하지 않은 민족의 심장
    광복 후 체육교사로 아이들에게 꿈과 정신을 가르친 열정의 교육자
    광복 80주년, 손녀가 전하는 잊혀진 영웅의 삶…평전 출간 예정
    ▲1937년 7월 11일 日 칸토-도쿄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마라토너 고(故) 남기룡 [남청웅 제공]

    2025년은 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이 해는 한 시대, 한 민족의 자존을 품고 트랙을 달렸던 숨겨진 영웅, 마라토너 고(故) 남기룡 선생의 탄생 110주년이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형 남승룡 선생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다면, 동생인 남기룡 선생은 그 뒤를 이어, 일제강점기 올림픽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조선인 마라토너였습니다.

    1915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남기룡 선생은 가업이던 양조장을 포기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조선을 대표하는 마라토너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매진했습니다.

    1937년, 도쿄학생마라톤선수권대회와 칸토-도쿄 마라톤선수권대회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1940년 도쿄올림픽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남기룡 선생의 진짜 위대함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정신에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음에도, 선생은 조선 민족의 상징이었던 서울 양정고보의 'Y' 유니폼과 오렌지색 팬츠를 입고 훈련과 경기에 임했습니다.

    양정고보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교육을 지켜낸 대표적인 민족 학교로, '조선의 두뇌와 심장을 키운 학교'로 불렸습니다.

    육상 명문이자 민족정신의 요람이었던 이 학교의 유니폼은 그에게 있어 단순한 체육복이 아닌 민족의 정체성 선언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과 저녁, 'Y' 유니폼을 입고 도쿄 시내를 달리며 "나는 조선인이다"라는 존재감을 온몸으로 외쳤습니다. 

    이로 인해 야쿠자의 표적이 되어 칼에 찔리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생명을 잃을 뻔한 큰 상처는 가까스로 회복되었지만, 그로 인한 흉터는 평생 그의 몸에, 그리고 후손들의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광복 후 남기룡 선생은 전라남도교육청 체육교사로 부임해 아이들에게 마라톤뿐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를 가르쳤습니다.

    그를 회상하는 89세 제자 곽종렬 법무사는 "지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셨고, 무엇보다 뜨거운 교육자셨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 헌신은 1960년, 대통령 면려포장 수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트랙 위의 투지와 교단 위의 사랑, 그 모든 길은 조국을 향한 하나의 방향이었습니다.

    2025년 5월, 양정고등학교 창학 120주년 기념식에서 남기룡 선생은 특별상을 수상하며 역사에 다시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올해 광복절, 그의 삶은 손녀인 올림픽 아나운서 출신 남하린 씨와 장남인 남청웅 호남대 명예교수에 의해 다시 기록됩니다.

    남하린 아나운서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전남교육청 광복 80주년 골든벨 특집의 MC로 참여하게 되어 크나큰 영광"이라고 밝혔습니다.

    비록 세계 2차대전으로 인해 남기룡 선생은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의 꿈을 펼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나는 조선인이다"라는 발자국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심장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일제가 침묵을 강요하던 시대, 'Y' 유니폼 하나로 민족혼을 불태웠던 마라토너 남기룡 선생.

    그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며, 그리고 진정한 국민의 마라토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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